▲ 남극 세종과학기지(위치: 남 쉐틀랜드군도 킹죠지 섬) 출처= 국토교통부

인류가 살고 있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지구는 그 자체로 무한한 상상력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지구는 지진, 화산, 쓰나미 등을 통해 인류를 경각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이 자연 재난들은 지구의 내부구조와 관련된 자연 현상이다. 이지구환경과학은 그래서 더욱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한 학문의 세계다.

지진파를 비롯한 지구물리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수천 km 되는 지구의 내부구조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듯이 들여다본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아찔하다. 깊은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관찰하고 그들의 생태를 규명한다는 것은 지구환경과학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고 보람이다. 남극대륙도, 심해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새로운 연구 지역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행성의 형성 과정과 행성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체의 흔적을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한 연구를 넘어서는 가슴 벅찬 일이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남극 전문가 장순근 박사는 “누가 그런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있는가? 누가 그런 가슴 벅찬 감격을 맛볼 것인가? 누구보다도 지구환경과학에 도전하는 오늘날 우리의 젊은이들이야말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 대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김용준·정운찬 외 지음, 아카넷, 2008)에서 장순근 박사가 말하는 ‘지구환경과학’을 정리했다.

지구환경과학이란

글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지구, 곧 땅과 바다와 대기가 그 연구대상이다. 46억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지구는 단순히 60억이 넘는 인류가 사는 곳을 넘어선다. 지구가 생긴 이래 대륙들이 몇 번이나 합쳐졌다가 분리됐고, 지구가 얼음덩어리처럼 얼어붙었던 빙하시대가 몇 차례나 있었다. 또 지구 내부에서는 지구를 만드는 물질, 이른바 바위가 녹은 마그마가 용암의 형태로 화구로 솟아올랐고 지구는 지진으로 흔들렸다. 그에 따라 바다와 대륙과 대기를 포함한 지구의 환경이 끊임없이 변했으며 수많은 생물들, 이른바 고생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렇게 지구가 생긴 다음 지구에서 일어났던 자연현상의 시간과 공간에 따른 변화들과 지구에 살았던 생물들의 출현과 멸종을 종합해서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지구환경과학의 큰 분야인 지질과학이다. 지질과학은 한마디로 지구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지구 모습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류를 기술하는 인문과학인 지리학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구환경과학의 한 분야인 해양과학은 지구 표면의 70.8%를 차지하며 평균 깊이 3천800m인 출렁거리는 넓고 깊은 바다가 연구대상이다. 대기과학은 땅과 바다를 포함한 지구 표면을 둘러싼 대기의 움직임과 변화가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그러나 바다와 대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육지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이들을 따로 나눠 보기는 어렵다. 세 인자가 함께 맞물려 지구의 환경의 만들어, 지구환경과학이라는 학문을 만든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해양과학과 대기과학은 주요한 연구대상이 주로 현재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지질과학과 다르다. 반면 과거의 바다와 대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곧 고해양과 고기후를 연구하면 지질과학의 한 분야가 된다.

지구환경과학은 모든 분야의 자연과학이 그렇듯이, 순수연구 분야와 응용연구 분야가 있다. 전자는 위에서 말한 지구환경 자체를 해석하고 설명하고 예측하는 분야를 말한다. 후자는 전자를 바탕으로 한 지식을 인류의 실제 생활에 응용하는 분야를 말한다. 예컨대, 지하수와 석유나 금속자원과 같은 지하자원 개발이 응용 분야의 대표이다. 대기의 조성과 움직임을 이용해 비를 내리게 한다면, 이는 대기과학의 지식을 응용하는 것이다. 또 고층대기의 상태를 파악해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의 설계나 장거리 통신에 적용한다면, 이는 고층대기과학의 지식을 응용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세기 들어 지구환경과학은 다른 분야의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발달했다. 그 가운데서도 인공위성과 지구 내부를 탐사할 수 있는 지구물리장비와 같은 컴퓨터 기기들의 발달이 지구환경과학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리고 재료공학과 전자공학의 발달로 감도가 아주 높은 감지기가 개발돼, 지면이나 해수면의 미세한 운동이나 환경 변화, 해저지형을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또 극미량을 분석할 수 있는 기기들의 발달도 지구환경과학의 발달에서 큰 몫을 차지했다.

20세기 들어 이룬 지질과학 업적 몇 가지를 인용해보자(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와 함께 발표한 내용). 기초업적들로 생각되는 업적들을 간단히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1)대륙이동 증명, (2)절대연대 측정, (3) 생명의 기원과 발견, (4)광물과 암석 형성과정 설명, (5)지구 내부구조 연구, (6)지자기 연구, (7)고기후 연구, (8)심해 굴착, (9)외계에서 온 물체 충돌, (10)거대한 해저 화성암체 발견, (11)천체지질학 등이다.

이러한 기초업적을 바탕으로 지질현상을 간단한 현상이 아닌 복합된 현상이자 입체현상으로 해석하게 됐다. 나아가 지구물리학자들은 20세기 후반기 지구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 결과 가설로 지하 2천900km인 외핵 표면의 상태와 물질의 분포를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지하 5천100km에 있는 고체인 내핵이 다른 부분보다 1년에 1/4~1/2° 빨리 회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차이가 마치 발전기의 원리와 같아, 지구자기와 그 변화의 원인이 되리라 추정된다.

또 20세기 후반에 심해의 생명활동이 관찰되기에 이르렀다. 곧 1970년대 말 동태평양의 해저지각이 확장되는 축인 동태평양 중앙해저산맥의 한가운데 부분인 깊이 2천700m의 열곡에서 발견되 심해열수공의 생태계는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다. 태양에너지가 닿지 않는 깊은 바다의 현무암 바닥에서 마그마의 열로 350℃나 될 정도로 뜨거워진 물이 솟아나는 열수공 둘레에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온도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메탄가스가 솟아 나오는 심해 바닥에서도 처음 보는 새로운 동물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발견됐다. 이 발견은 단순히 해양지질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해양과학과 생명과학과도 관련이 깊은 분야다.

관측장비의 해상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지구환경과학 앞에는 더욱 많은 과제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받아들였던 판구조론을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지체구조학자들의 의견이다. 행성이 연구되면 행성의 내부구조와 행성을 만든 물질의 연구에는 지질과학을 빠트릴 수 없다. 또 만약 행성에 생물의 흔적이라도 있다면 행성의 고생물학도 연구해야 될 것이다. 실제 우주공간에서 날아 온 운석에서 생명체의 기원이 되는 물질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또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는 평균두께 150km 정도의 얼음으로 엎여 있고 그 아래에 바다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바다에는 그 천체에서 발달했던 생명, 나아가 지구의 생명 발달을 설명할 수 있는 흔적이나 물질이 없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분야의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구환경과학은 그야말로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지구환경과학을 공부하려면

지구환경과학을 공부하려는 젊은이들은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첫째, 지구를 포함한 대자연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자신이 모르는 미지 세계에 도전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호기심을 발달시키려면, 책이나 강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하나 따져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둘째, 모든 분야의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데에도 그렇지만, 지구환경과학도 과거에 생각해왔던 그대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다르게 생각하는, 이른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사고의 전환은 단순히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훌륭한 해결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일정한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버리고 남들이 과거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지구의 내부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지구가 동심구(同心球)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1936년 덴마크의 여성 지진학자인 잉게 레만(1888~1993)dl 지구 내부에는 외핵과 내핵이 있고 외핵이 액체라는 것을 가설로 제안했다. 이는 놀라운 발상이었고, 수십 년이 흐른 다음 사실도 증명됐다.

지구환경과학은 순수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므로, 자연과학의 기본인 수학이 필요하다는 점은 다른 분야의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다. 또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이제 자연과학은 단순히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구환경과학을 전공해도, 세부 전공에 따라서는 전자공학을 포함한 응용 자연과학에 대한 소양도 있어야 한다. 또 관찰자료가 많아지고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지형과 조건을 자연조건에 가깝게 자세하게 모방하고 가정한 모형(model)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다.

앞으로는 학문 간의 연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이므로 지구환경과학자들은 활동영역이 단순히 땅과 바다와 대기에 국한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구환경의 지식을 응용하는 분야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고고학이나 고인류학에서도 지구환경과학의 지식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미술과 음악 같은 예술의 중요성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daenam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