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면 항상 말이 많다. 물수능, 불수능, 문제 오류, 부정행위 등 이런 상황 속에서 수험생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돌아보기보다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통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능 이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수능은 점수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일 뿐이다. 수능은 결과가 아니라 활용할 수 있는 재료다. 정시모집 지원을 앞둔 지금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4개 영역의 영역별 점수와 합산 점수를 통해 어느 정도 대학을 갈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대략적인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때는 백분위를 통해 쉽게 점검할 수 있다. 4개 영역 백분위를 일단 단순 합산해 평균을 내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고려해서 배치표의 얼개를 만들어 보면 쉽다. 서울권 4년제 대학의 정원은 약 7만명, 수능 응시자는 약 64만명이다. 소위‘in 서울’을 하기 위해서는 대략 11%(89%) 안에 들어야 한다. 서울권 대학 중 중위권 이상을 가려면 5.5%, 그 중에서도 상위권을 가려면 2.7%에 들어야 한다. 전국으로 확대해 보면 4년제 대학의 총 모집정원은 37만명이다. 60% 즉 5등급 안에 들어야 합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보면 일단은 대략적 위치를 파악해 볼 수 있다.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주의하여 지원 전략을 세워보도록 하자.

수능 반영영역과 반영비율이 중요하다

수능 반영영역과 반영비율, 그리고 활용지표 등은 지원전략의 기초다. 대학별 전형요강을 보면 국어, 수학, 영어, 탐구영역별 반영비율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내 위치와 희망하는 대학을 몇 군데 선정한 후 해당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된 반영비율을 적용해 점수를 산출하는 작업을 해 봐야 한다.

학생의 성적을 반영비율로 계산해 포트폴리오식으로 만들어 보면 대학별 유불리가 정확히 드러나게 된다.(표 참조) 즉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후 비슷한 대학의 반영비율 적용, 이것으로 자신의 합격 가능성 여부를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도 높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정시 특별전형을 주목하라

특별전형이라고 하면 대체로 수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는 것만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별전형을 구분해 보면 크게 사회기여(군인, 경찰, 유공자 자녀), 사회배려(기초생활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특성화고교 졸업(또는 재직자) 전형으로 구분하는데, 이 가운데 사회 배려자전형은 정시에도 많은 대학에 개설되어 있다. 특히 정시에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적용되는 대학이 상당수 있다. 원래 이런 전형들은 지원조건이 까다로울수록 지원자 풀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률이 낮아지고 합격선이 떨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경우에 따라 지원자가 없는 모집단위도 존재한다.

국어, 수학, 탐구 못봐도 가능성 있다

수능에서 국어, 수학, 탐구영역에서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대입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충청, 강원, 영남, 호남지역에 있는 사립대학은 대부분 2~3개 영역만을 반영하고, 전문대학도 그 정도만 반영하기 때문이다. 즉 소위 2개 영역을 망쳤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지방대학이나 전문대학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잘 찾아보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도 3개 영역만 반영하거나, 특정 영역을 매우 낮게 반영하는 대학들이 제법 존재한다.

예컨대 국어를 망친 인문계 수험생들은 국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성신여대(간호), 이화여대(보건대학), 홍익대(자율전공), 차의과학대(헬스경영) 등에 도전하면 된다. 그리고 국어영역이 심하게 망가지지 않았다면 10%만 반영하는 성신여대, 15%만 반영하는 숭실대 등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자연계 수험생의 경우는 더욱 더 기회가 많다. 가톨릭대, 한성대, 광운대, 세종대, 숭실대, 아주대, 중앙대 등이 그 기회에 해당된다.

서울권 4년제大 입학하려면 수능 상위 11% 안에는 들어야
국어·수학 못봐도 희망있어 … 실기 없어도 예체능大 간다
수학 약한 여수험생 정시 기회 세번 중 한번은 '여대' 지원

수학도 마찬가지인데, 자연계에서 국어영역을 적게 반영하는 4년제 대학이 많은 만큼 인문계에서는 수학을 적게 또는 아예 반영하지 않는 대학들이 꽤 많이 있다. 덕성여대, 서울여대, 차의과학대 등은 수학 반영비율이 0%다. 15% 이하를 반영하는 대학만 해도 성신여대, 인하대 국어교육, 한성대, 서경대(이상 10% 반영), 숭실대, 용인대 경찰행정, 상명대(이상 15% 반영) 등이 있다. 자연계에서 수학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은 사실상 4개 영역 중 상위 3개 영역 점수만 갖고 평가하는 홍익대 자율전공이 유일하다.

탐구영역은 1과목만 반영하는 대학들이 있다. 가천대, 강남대, 경기대, 명지대, 삼육대, 서경대, 수원대, 용인대, 한신대 등은 탐구 1과목을 탐구영역으로 반영한다. 과학탐구 반영 비율이 높은 자연계 정시에서 탐구영역 1과목 반영은 합격과 불합격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큰 변수가 된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영어를 망쳤을 경우는 별다른 구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대학이 영어를 반영하고 있는 가운데, 영어 미반영 대학을 굳이 찾아보자면, 4개 영역 중 상위 3개 영역을 반영하는 이화여대 보건대학과 홍익대 자율전공 정도가 있다.

전문대학 중에서는 심지어 1개 영역만 반영하는 대학이 있는데, 경기도에 있는 전문대인 안산대학은 수시 2차에서 탐구 1과목만을 반영해 학생들을 선발한다.

실기 없이도 예체능 대학에 갈 수 있다

정시 전형 중에는 실기 없이 예체능 대학에 도전할 수도 있다. 대체로 영화과 연출 전공이나 스포츠과학과 등에는 실기가 형식적이거나 전혀 없이 수능 성적만으로 갈 수 있다. 특히 예체능 실기의 비용 부담이나 부모님의 반대로 실기를 준비하지 못한 수험생들이 있다면 실기가 없는 예체능대학을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표적인 대학과 학과로는 건국대 영화학과, 경기대 예술학과 및 영화학과, 경희대 스포츠의학과와 골프산업학과, 동국대 연극학부 및 영화영상학과,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서경대 미용예술학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인하대 연극영화전공, 중앙대 연극영화 전공,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등이 있다.

이 대학들은 대부분 수학을 반영하지 않는다. 수학이 약하고, 국어와 영어에 자신이 있고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도전해 볼만한 전형들이다.

여학생이라면 여대를 생각해 보라

최근 여학생들의 여대 선호도는 크게 낮아진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별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여학생들의 경우 여대가 있기에 서울권 4년제를 입학하기가 남학생들에 비해 쉬운 편이다. 서울의 대학 입학정원이 약 7만명인데 이중 여학생만 응시할 수 있는 여대 모집정원이 1만3천명으로 전체 서울권 모집정원의 16% 정도가 되는 엄청난 비율이다. 즉 여학생에게는 서울권 4년제를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남학생보다 훨씬 많고 높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화여대와 숙명여대를 제외한 나머지 성신여대, 서울여대, 덕성여대 등은 수능 반영영역과 비율에 있어서 수학영역 비중이 낮거나 없어서 수학이 약한 여학생들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여학생 중에는 여대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울권이라는 이점, 즉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각종 학술적 인프라 등을 생각해 본다면 구태여 여대를 피하기 위해 지방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in서울을 원하는 수능 3등급대의 중위권 여학생이라면 3번의 정시 기회 중 1회는 가급적 여대에 지원해 볼 것을 적극 권한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2학년 부장

서울시교육청 대학진학지도지원단, EBS 진학상담실 상담교사, 교통방송‘TV 상담 받고 대학가자’상담교사, 상명대·성신여대 입학사정관실자문위원등으로활동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