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이나 학부모, 진학지도 교사들은 대학과 학과 결정을 앞두고 사설 입시학원의 ‘배치표’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대학 서열의 고착화는 학생들에게 맹목적인 ‘상위권’ 대학 진학에만 관심을 쏟게 만든다.

“배치표에 여러분의 미래를 저당 잡히기 보다는 여러분들이 꿈꾸는 미래를 현실로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고3 담임을 맡은 적이 있는 한 고등학교 선생님의 당부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본격적인 입시철이 되면 사설 입시학원이 제공하는 ‘배치표’는 베스트셀러다. 요즘엔 입시학원 인터넷 사이트에서 온라인 배치표 ‘유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입시학원마다 표본집단이나 배치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2~3군데 배치표를 구해 비교 분석하기 일쑤다.

수험생이나 학부모, 진학지도 교사들은 대학과 학과 결정을 앞두고 사설 입시학원의 ‘배치표’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교육부가 올해 2월에 발표한 2007년 사교육 의식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고등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의 실질적인 영향으로 ‘진학정보 획득’을 1순위로 꼽기도 했다.

대학·학과 특성화는 뒷전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정보를 ‘학원’이 주도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들이 내놓고 있는 ‘배치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배치표’의 가장 큰 병폐는 ‘점수’만으로 대학 서열의 고착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사설 입시학원은 아직도 점수로 대학을 서열화해 학생들의 ‘한 줄 세우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대학 서열화 구조는 현실이다.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대학의 특성화 노력도 대학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지만 대학서열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치표는 변화하고 있는 대학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대학 현장과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특성화 교육프로그램’은 뒷전이다. 교수진의 능력은 이제 전국 대학이 평준화돼 있다는 평가가 많고, ‘선입견’이 클 뿐이지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들도 내실있는 ‘국제화’ 프로그램과 새 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 많다. 배치표에는 대학 특성과 학과 특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물론 진학결정이 배치표에 의존하게 된 이유가 입시학원 탓만은 아닐 것이다. 진학결정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료나 정보가 부족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학 서열화는 입시학원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다. 대학 서열이 사라진다면, 그래서 입시 경쟁이 완화된다면 입시학원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 서열의 고착화는 학생들에게 맹목적인 ‘상위권’ 대학 진학에만 관심을 쏟게 만든다.
사설 입시학원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을 중심으로 진학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대학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점수 경쟁’에서 뒤처지면 ‘재수’를 선택하게 한다. 물론 재수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점수 경쟁에 밀린 이유만을 선택하는 것은 문제다. 지금도 한 대형 입시학원은 정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재수 선행학습반’을 모집하고 있다.
2009학년도 수능 성적 기준으로 언어, 수리, 외국어 3개 영역 중 1개 영역 이상이 1등급인 학생은 ‘무시험 전형’으로 12월 10일부터 접수를 받는다.

“성적·적성·대학발전 가능성 종합 고려”
지난 2004년 12월 한국교총과 전교조 등 7개 교육단체들은 “사설 입시학원의 대학 배치 기준표가 교육개혁에 역행하고 있다”면서 배치표 근절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안으로 “수험생들이 성적과 특기, 적성과 대학의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지난달 19일 대전에서 열린 서울권 7개 사립대 공동 입학설명회에서 한 입학처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선 입시학원의 배치표에 의존해 성급하게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능 성적이 통보되고 객관적인 자료가 나온 뒤에 선생님과 충분히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