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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안되자 '취업정보' 공부 … 정부지원 '상대적 경쟁' 조장 역효과
'갈팡질팡' 불안감만 키우는 '취준생'은 괴롭다
2016년 08월 04일 (목) 13:33:16 최성욱 cheetah@kyosu.net

통계청에서 집계한 2015년 청년실업률은 9.2%로, 1999년 조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자는 39만7천여 명, 이들 가운데 대학 졸업자(대졸자)는 20만5천여 명으로 절반이 조금 넘는 51.6%를 차지한다. 반대편에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청년층 고용률은 대략 40%이고, 이들 가운데‘1년 이하의 계약직’비중이 2011년 이후 줄곧 20%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통계상으로 열에 넷 정도가 취업을 하고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들어가는 데 거의 1년(평균 11개월 이상)정도 걸린다. 첫 직장의 만족도와 유지 취업률 등이 일부 누락된‘통계의 오차’를 감안하면 실제 대졸자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현실은 훨씬 더 곤궁한 실정이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daenamu.kr


최근 상명대를 졸업한 김아무개씨(29세·남, 이공계)는 서울 종로의 한 대형서점을 찾았다. 딱히 사고 싶은 책은 없었지만 자기소개서·자격증 코너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취업정보를 얻으려고 들린 것이다. 김씨는 대학 4년을 마쳤지만 여전히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할지 결정하지 못한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 때문일까. 서점엔 분명 취업정보를 얻으러 왔는데 김씨의 시선을 사로잡는 책은 있을 리 없었다. 김씨는 이내 초점 잃은 눈으로 공기업 관련 수험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리진 않을 거고요. 공사나 공기업 쪽을 알아보고 있어요. 보통 학원 끝나면 학교 도서관에 가는데 오늘은 종일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서점에 와봤어요. 공기업 관련 시험에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 살펴보고 있었어요. 실은… 막막하기만 하네요.”

풀죽어 말하는 김씨는 학점과 영어점수가 또래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지만, 웬만한 중견기업의 면접전형까지 합격할만큼 다양한 재능과 내공(!)을 겸비하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땐 S공사에서 3년 내리 기자단 활동을 했고, 모 인터넷 언론사 인턴기자로 활동하면서 현직기자들의 추천도 받았다. 전공은 이공계이지만 글쓰기와 홍보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만큼 자신감도 차 있다.

하지만 최근 수차례 면접전형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응시한 홍보·마케팅업체들은 대체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도 경력사항을 요구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학시절 열심히 갈고 닦았던 아르바이트, 인턴 등 자신의 소중한 ‘경력들’은 모두‘대외활동’으로 밀려나 버렸다. 기업들이 이른바‘경력 같은 신입’(사실 상 경력사원)을 선호한 탓이다. 차근차근 대외활동만(?) 쌓아온 김씨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 취업난이 수년째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서점가엔 취업 관련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종로의 한 대형서점에는 취업준비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취준생’ 김 아무개씨가 취업정보 서적을 뒤적이고 있다.

공기업에 눈을 돌린 건 이 때문이었다. 지인들은 “차라리 한두 해 ‘시험’을 준비해서 안정된 일자리를 갖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조언했다. 하지만 선호도가 높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또래에 비해 나이도 많은 편이라 선뜻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은 중소기업에서 6개월이든, 1년이든 홍보·마케팅 분야의 실무경력을 쌓고 나서 다시 도전해보면 어떨까? 김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막막한 현실이 답답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등록금 4천만원을 들여서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느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요. 또 한편으론‘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하하) 맞아요. 일종의 희망고문이죠. 제 주위엔 중소기업에 다니다 사표를 내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간 친구도 있어요. 다들 첫 직장, 첫 직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요즘은 뿌연 안갯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걷긴 하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방향이 잡히면 미친 듯이 뛰어갈 텐데….”

김씨는 토익학원에서 오전 9시부터 3시간씩 주 5일을 수강하고 보강이 있는 날엔 주말에도 학원을 나온다. 학원이 끝나면 대학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하거나 취업정보를 검색한다. 인터넷 취업커뮤니티에 본인의 스펙과 자기소개서를 올려놓고 평가를 받는다. 이런 커뮤니티가 세 군데나 있다. 들락날락하다보면 부질없이 시간은 흐르고 머릿속엔 온통 취업정보로 가득찬다. 취업이 안 되니 취업정보를 공부하는 셈이다.

“(취업이 안 돼서) 답답하니까 취업정보를 머리에 자꾸 집어넣는 거예요. 일종의 중독처럼요. 정보가 많아지니 자연히 생각도 많아지죠. 그러다보면 제게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 믿게 되는데, 이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찾거나 목표를 세우는데 방해만 되는 것 같아요. 취업정보는 일면‘모르는 게 약’이지 싶어요.”

상대적 경쟁 과열시키는 데 예산 수조원 투입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을 준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절벽(!) 같은 상황은 김씨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0년을 전후로 대학에 교양교육이 강화되고, 취업지원정책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학생들은 그 어느 시대의 대학생들보다 바쁘게 학교를 다녔다. 예컨대 도서관에 ‘자리맡기 전쟁’이 학기 초부터 시작되는 이유도 졸업생들(취준생)이 학교를 떠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신입생들이 경쟁적으로 도서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기자단의 설문조사(2012년)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신입생 341명 중 절반이 훌쩍 넘는 63.4%가 겨울방학 계획으로‘취업 준비’를 꼽았다.

이처럼 1학년부터 취업 준비에 돌입하는 요즘 대학생들은 정부와 대학의 각종 교육·재정 지원정책의 영향으로‘슈퍼 대학생’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학 1학년엔 기초교양교육을 통해 토론·의사소통능력을 연마하고, 2학년엔 글쓰기·독서·프리젠테이션 기술까지 익힌다. 최근 교육부가 ‘사회맞춤형 교육’을 강화하면서 3~4학년들은 산업체 현장실습은 물론 산학협력에 직접 참여할 기회까지 가진다. 이밖에도 학생들은 창업동아리에 가입하고, 틈틈이 각종 경진대회에 참가해 수상 실적을 쌓는다. 이것도 모자라 어학연수·인턴십 프로그램·교환학생·워킹홀리데이 등 다양한 해외 경험을 겸비한다. 대학 안팎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까지 참가하니 학부 4년간 숨돌릴 틈이 없다.

학생들이 이렇게 바빠진 1차적 요인이 경제난에 따른 일자리 축소라면 이들의 스펙 경쟁을 부채질한 건 정부와 대학의 교육정책이다. 최근 정부와 대학은 에이스·링크사업 등을 통해‘학부교육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와 동시에 ‘취업률’을 앞세운 대학평가와 구조조정 정책을 보태면서‘학부교육 강화’는 곧바로‘취업역량 강화’로 말을 갈아타게 됐다. 대학에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명목으로 쏟아붓는 교육부 예산만 연간 수천억원에 달한다.

교육부는 심지어 “대학교육 전체가 취업이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학부교육=취업교육’으로 등치시키고 있다. 박재성 교육부 취업창업교육지원과장은 “고용노동부와 달리 교육부는 취업을 직접 지원(직업훈련)하는 게 아니라 링크사업이나 특성화사업과 같은 재정지원사업으로 대학교육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최근엔 창업분야까지 확대하고, 고용노동부·중기청 등과 협업을 통해 대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놓으면서 연간 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13개 정부부처에서 60여 개의 청년 일자리 사업을 통해 2조원대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달엔‘청년·여성 일자리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처럼 청년실업 문제는 정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지원하고 있다. 정책이나 예산이 부족해서 문제가 지속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청년실업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정책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초래되는 악순환의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기업체의 채용을 늘리는 방안에 집중해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과 예산이 학생의 취업역량을 높이는 데 쏠리다보니 상대적 경쟁을 부추기는 효과만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진미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고용환경이 나쁠 때는 좋은 일자리를‘얼마나 더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지금은 좋은 일자리에‘누가 갈 거냐’를 두고 예산을 쏟아붓는 식이다. 일자리는 점점 줄고 있는데 대학은 취업역량을 강화하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대졸자끼리의‘상대적 경쟁’만 치열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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