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좋은 학교'를 찾는 것은 취업을 염두에 둔 탓이 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적성을 무시하면 취업도 어렵다고 충고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게 성공적 진로선택의 첫걸음이다.

노량진에서 만난 재수생 김 모 양(19)은 “학문 하러 대학 가는 애들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김 양에 의하면 친구들 대부분이 학과나 전공 보다는 최대한 높은 점수의 대학을 우선 선택하고, 학과를 뚜렷이 결정한 경우는 주로 의대, 한의대, 약대 등 전문직이란다.

“일단 좋은 대학 가면 취업에 힘써줄 선배들도 많잖아요.”라는 게 김 양의 생각이다.학문보다 취업, 교양보다 영어가 우선이 돼버린 대학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당장 취업에 불안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8년 수시 1학기 접수결과만 봐도 학과 선호도는 뚜렷이 갈린다. 원서접수대행업체 어플라이뱅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의학 계열, 보건, 유아교육 계열 등 사회진출이 비교적 용이한 학과는 대부분 2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였고, 50대 1을 넘는 곳도 있었다.

대학의 이름과 취업률은 비례하지 않는다. 적성 고려 없는 학과 선택은 후회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사진은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법학적성시험 고사장으로 향하는 학생들.

미국 유력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월 “수능 시험날 한국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시험에 방해될까봐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고, 한국전력 기술자 4천명이 정전에 대비하며, 주식시장이 한 시간 늦게 개장되는 등 ‘비상시국’이라는 것. 신문은 또 “한국인들에게 대입시험은 사회적 신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인식된다.”는 인용구도 잊지 않았다. 즉, ‘대학=취업’이라는 생각이 온 한국사회가 대입에 매달리도록 하는 것이다.

취업 영향력은 ‘대학보다 적성’
그렇다면 학벌이 좋아야 취업에 유리하다는 믿음은 얼마나 근거가 있을까?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2008년 고등교육기관졸업자취업률 통계조사’를 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타난다.

비교적 상위권인 수도권 소재 대학 취업률(75.2%)보다 비수도권 소재 대학 취업률(77.7%)이 2.5%p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반면에 정규직 취업률은 수도권 소재 대학이 56.2%, 비수도권 소재 대학이 56.1%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학벌이 취업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김선호 소장은 “수능 점수보다 적성과 흥미에 맞는 학과를 고려하는 게 졸업 후 취업에도 긍정적”이라고 충고한다. 김 소장에 따르면 대졸자 세 명 중 한 명 정도는 요구 학력이 자기 학력보다 낮은 직장으로 하향취업하고 있는데, 주요 원인은 학과와 적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실제로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다보면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한국고용정보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12.2%는 전공과 다른 직업에 취업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전공이 나의 적성, 흥미, 관심에 맞지 않아서’(45.1%)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학생의 경우 전공과 희망직종이 일치하는 학생들보다 월 평균 7만7천원의 학원비를 더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일수록 취업 준비가 덜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핵심은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지만 좀 더 이름 있는 대학에 가느냐, 유명하진 않지만 성에 맞는 학과에 가느냐’이다. 진로지도 전문가들이 권하는 것은 역시 후자다. 점차 명문대 출신이라는 간판보다는 전문성을 인정하는 기업문화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점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데다가 입시공부 이외의 활동을 해볼 기회가 적어서이다. 고등학교 교사 이은정씨(29)는 “학생의 절반 정도는 장래희망을 물으면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일단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을 중심으로 흥미 있을 만한 학과를 권해주지만, 직업과 학과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다 보니 모든 학생에게 딱 맞는 직업을 찾아주기는 어렵다. 이 교사는 “무엇이 되려고 대학에 가기보다 대학 자체가 공부의 목적인 아이들이 많다보니, 대학에 가고 나면 ‘겨우 이거였나’라는 허무감을 느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진로지도 전문가들은 적성과 학과를 탐구하는 몇 가지 팁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내가 제일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과목을 중심으로 관련 직종들을 찾아본다. 인적성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흥미가 있는 직업이 몇 가지 정해지면 관련학과 사이트를 방문해 자료를 찾아본다. 이 때 3~4개 학과를 동시에 찾아보면 비교할 수 있어 좋다. 선생님, 부모님, 선배님들의 조언을 얻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해당업종 종사자를 만나보는 것. 해당업종이 아니라도 아버지의 회사를 방문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해보면 직업과 사회생활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임효진기자 Editor@daenam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