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는 다른 19세기 후반 광화문의 전경이다. 국사학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세계 속의 '한국의 초상'을 그리는 작업을 해왔다.

문(文)·사(史)·철(哲). 문학·역사학·철학을 줄여 부르는 말로써 인문계열에서 강세를 떨쳤던 학과들이다. 인문학 위기의 시대를 지나며 그 영향력이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많은 교수들이 앞으로 다가올 세계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우리의 문학, 역사학, 철학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중·일 삼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사를 공부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서양사는? 한국사는? 대답은 ‘사학과’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학 분야를 크게 셋으로 나눠 한국사·동양사·서양사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법은 일본의 대학제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그러나 서울대의 경우만 이 구분대로 학과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뿐, 대다수 대학은 통칭 ‘사학과’에서 이 모둔 분야를 배운다.  본인이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야의 과목을 찾아서 수강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뭉뚱그린 하나의 사학과에서 방황하기 보다는, 각 과별의 뚜렷한 특성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 대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김용준ㆍ정운찬 외 지음, 아카넷, 2005)에서 두 명의 교수가 동양사학과와 국사학과를 소개한다.

동양사학을 선택하기까지

김호동 서울대 교수(동양사학과)가 동양사학을 전공으로 결심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방황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김 교수는 초등학생 때 미케네 유적을 발견한 슐리만의 전기를 읽고 고고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는 시인의 꿈도 꿨다. 그는 칸트, 헤겔 같은 철학자들의 책을 들고 산사에 들어가던 휴학 시절에는 철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군제대후, 스승(고 민두기 교수)의 권유에 따라 하버드로 가 중앙아시아사를 공부하며 ‘소명’처럼 동양사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됐다. 방황의 시절에 읽었던 책들은 동양사학을 공부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됐다.

동양사학 공부에 필요한 세 가지.

김 교수는 동양사학과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한다. 첫째는 삶의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거기서 생겨나는 공감력이다. 이는 역사학이 인간 활동의 궤적을 추척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방면의 폭넓은 독서와 이로 인해 형성된 복합적인 사고능력이다. 역사학이 다루는 범위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정말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어 능력이다. 역사학에서 문헌해독은 1차 자료해석에 직결되는 능력이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나.

국내의 동양사 연구는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가 주 연구대상이었다가 서서히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을 연구할 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조언한다. 선택한 지역에 따라 필요한 언어 공부는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한문을, 일본이나 베트남의 경우 한문 이외에 일본어와 베트남어럴, 이슬람권 역사라면 아랍어나 페러시아어 혹은 터키어를 배워야 하고, 내륙아시아나 유목민족 역사를 연구하려면 몽골어나 만주어 혹은 위구르어를 익혀야 한다.

그렇다고 언어가 전부는 아니라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언어는 자료 해독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해독한 자료에서 나타난 역사적 사실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재구성하는가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이다. 다양한 사료들에 감긴 기록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이제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과거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 주는 일은 창조적 사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김 교수는 이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독서와 토론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졸업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전문 연구자의 경우, 교수로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민간·정부 연구소에서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 또 사회로 진출한 졸업생도 동양사 이외의 학계, 언론계, 관계, 실업계 등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동서 간의 냉전체제가 무너진 21세기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한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던 질서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것이고, 한·중·일의 동아시아, 인도를 축으로 하는 남아시아, 석유와 이슬람을 무기로 가진 서아시아 등 아시아의 역할은 크게 증대될 것으로 본다. 김 교수는 기존의 서양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역사관을 정립하는데 동양사학과가 앞서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사학을 선택한 이유

일생 종사할 전공 선택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태진 서울대 교수(국사학과)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이 교수는 진로 결정에 있어 고민은 하되 지나치게 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어느 것을 택하든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하거나 보장할 수 없다. 결과는 오직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다만 소질과 적성은 중요하다. 이 교수는 40년 전, 대학입학 면접시험에서 사학과를 지망한 이유를 묻는 교수에게 “역사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했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나.

한국의 고대, 중세, 근대, 현대사를 폭넓게 배운다. 또한 독립운동사, 사상사, 과학기술사, 상공업사 등 각 한국 역사에서의 시기별 사상 발달사를 시대적 상황과 함께 공부한다. 남북분단의 문제나 동아시아 유교전통, 민족형성사, 조선의 선비정신 등의 교양과목들도 전공과목과 연계돼 함께 역사적 지식을 풍요롭게 한다.

이 교수는 한국사학을 우리의 초상을 그리는 작업으로 비유한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왜곡됐던 한국사의 본모습을 찾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고 회고한다. 일제는 강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자력으로 근대화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폄하했고, 일본이 나서서 도와준다는 정당화 논리를 폈다. 1960년대는 이런 식민주의 사학이 왜곡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바로 잡고 알기 위해 국사학자들이 부단한 노력을 했던 시기다.

좋은 역사학자가 되려면.

이 교수는 좋은 역사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료를 많이 읽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정한 사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읽은 사료의 양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다. 또한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앞에 놓고 그 전후 관계를 꿰뚫어보는 눈인 사안(史眼)과 역사상의 이런저런 중요한 일들에 대한 지식인 사식(史識)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 역시『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조선왕조실록』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그는 최근 10년간 근대사(고종시대사)를 공부하며 일본 외교문서를 비롯한 일본 측 관계 사료도 거의 모두 읽었다. 이 교수는 이렇게 공부를 계속하다보니 우리 역사의 주맥을 설정할 수 있게 되고, 중요도에 대한 분별력도 생기게 됐다고 말한다. 사안과 사식이 자라는 가운데 사관이 절로 정립되는 것이다.

어떤 학생이 국사학에 어울릴까.

몇 년 전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에 2년 동안 대학원 진학생이 없던 적이 있다. 토익과 각종 ‘고시’ 공부가 대학가를 휩쓰는 가운데 당한 아카데미즘의 대형사고였다. 이 교수는 이 사태를, 젊은 세대가 무한경쟁 세태 속에 살아남기 급급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잇속을 따지면 한국사학, 역사학, 인문학은 살아남을 길이 없지만, 기초학문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OECD가입국의 지위도 상실할 것이고, 결국 나라의 기반이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용기 있는 한국사학도를 기다린다. 눈앞의 계산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거룩한 정신을 발휘하는 학생이 국사학과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고등학생들이 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인 세종대왕의 가르침을 기억하길 바란다. “천하의 근심은 내가 남보다 먼저 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내가 남보다 늦게 한다.” 이런 희생의 덕목을 실천하는 학생이 국사학과에 어울린다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졸업 후 진로.

전문 국사연구자로는 대학원 진학 후, 교수 혹은 민간·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 종사한다. 학계 다음으로는 언론계와 출판계의 진출이 활발한 편이다. 국내 유수의 방송사와 신문사, 잡지사, 출판사에는 국사학과 출신의 사주, 간부를 비롯한 언론인들이 많다. 그밖에 중고등학교 교사나 일반 기업체에도 많이 취업한다. 폭넓은 인문적 교양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환영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운동이 진전돼 가는 현 상황에서 남북교류와 민족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책임이 점차 커지고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daenam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