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부딪혀 보는 거죠!”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김성용 군이 세우는 계획은 ‘입·출국 날짜’ 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를 던져야할 때이다.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살려면 머리를 단련시켜야 한다. 나 자신의 확신과 선택에 따른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은 젊음의 특권인데, 요즘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여기 어학연수 가려다 세계 여행을 다녀온 대학생이 있다. 요즘의 여느 대학생들처럼 ‘경력 쌓기’ 코스로 출발한 어학연수가 세계여행이 되어 돌아온 사연을 들어보자.

서점에 들렀다. ‘(군)제대도 했겠다, 대학생인데 어학연수 몇 달 정도는 다녀와야지’ 하는 마음에 유학 정보지를 이리저리 뒤적이던 그 때, 두 손이 떨려왔다.

초등학생 때 사회과부도에서나 심심풀이로 펼쳐보던 세계지도! 깨알같이 작은 한반도가 그나마 절반으로 잘려 있다니… 이렇게 살다간 고작 요만큼(지도에 그려진 한반도 크기) 밖에 못 살아보고 죽지 싶었다.

‘여행이나 갈까?’
김성용 군(서강대·신문방송학과·4, 28세)은 어학연수 대신에 자유배낭여행을 택했다. 친구의 소개로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사회 디자인 학교(기존의 사회제도와 일상을 재설계해 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학교, 일종의 NGO)에서 석 달을 공부하면서 여행 채비에 돌입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는 말은 당시 그에겐 더 이상 고리타분한 ‘잔소리’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남미(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를 경유해 유럽(스페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터키)으로 발길을 옮겼다. 레바논 베이루트를 거쳐 아프리카(이집트, 수단, 케냐)대륙까지 1년간의 여행은 이어졌다.

“속았구나”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생경한 사회 속에 나를 던져 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기 철학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의 경직성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진 것도 이 때문일까.

자신의 삶을 돌이켜 “한국 사회는 자신보다 주변의 시선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김성용 군은 고교시절, 드라마<카이스트>를 보면서 천문학자의 꿈을 키웠다. “굶어 죽을 거냐”라는 부모님의 걱정 때문에 목표를 바꾸어야 했다. 재수 학원에 다니면서 라디오 PD가 돼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과감히 ‘문과 전향’을 선언했다. 물론 그럴싸하게 느껴졌던 방송국 PD에 대한 환상은 어느 정도 가신 지금이지만, 그때는 주변의 인정과 격려를 듬뿍 받았다. 한국사회에서 천문학자와 방송국 PD의 길은 이토록 다르다.

꿈에 부푼 스무 살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어느덧 졸업반이 돼 버린 김성용 군은 여행 이후에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름대로 열심히 해봐도 안되는 게 있기 마련이에요. 재수시절도 그랬죠. ‘다 내 탓이오’ 하며 애꿎은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 의미를 찾으면 됩니다. 내가 좋다면 진정 좋은 것이죠.”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라”
김성용 군은 진학·진로를 두고 고민이 최고조에 달한 수험생 후배들이 안타깝다. “진로나 적성에 대해 알아봐야 책이나 주변 사람들의 추천 정도겠죠. 실제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잠깐 스치는 생각도 스스로 권력을 부여해 보세요. 예컨대 TV에서 뮤지컬 배우를 보면 자신을 투영시켜 보세요.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흥미로운지 고민하세요. 동아리 활동이든 외부단체 활동이든 직접 부딪혀 봐야 합니다.”대학입시를 앞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부탁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시원시원하다.

“수험생들은 자기정체성을 명확히 규정하기 힘든 시기에요. 크게 욕심 내지 마세요. 매사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만의 세계를 다져가다 보면 목표가 선명해질 겁니다. 사실은 꿈을 찾아가기에도 대학 4년은 짧아요.”

최성욱 기자 Editor@daenam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