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에서 아주 이례적으로 물리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의학자나 생명과학자가 수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2003년에는 자기공명영상(MRI)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물리학자와 화학자가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MRI는 인체 내부를 상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실 사람의 몸속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고대 헬레니즘 시대부터 이어온 해부학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해부학에서처럼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건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X선이 의학에 도입되면서 해부를 하지 않고도 환자의 몸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됐고, MRI의 개발로 몸속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됐다.

MRI와 같은 진단도구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은 의료분야에서 정확한 진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병이 발생한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면 엉뚱한 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 정확한 진단이 치료의 시작인만큼 병원에는 정확한 진단을 도와주는 전문적인 직업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임상병리사’와‘방사선사’다.

임상병리사가 하는 일은

임상병리사는 의사의 요청에 따라 혈액검사, 소변검사, 조직검사, 뇌파검사, 알레르기검사 등의 의학적 검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분석한다. 임상병리사가 분석한 검사 결과는 의사가 질병의 유무와 증상을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 두 직업의 경우, 진출분야도 병원을 벗어나 보건의료 전반으로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연세대(원주) 임상병리학과 학생들의 진달혈액학 실습 장면이다.

환자가 왔을 때 의사는 보통 문진과 진찰 등을 통해 몸의 이상 여부를 살피게 되는데, 이때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임상병리사에게 질병과 관련된 검사를 의뢰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조사하게 한다. 그리고 임상병리사에게 검사 결과를 전달받은 의사는 질병의 유무와 중증 정도를 진단한 후 추가 검사를 요청하거나 향후의 치료방향을 결정한다.

검사방법은 주로 검사물(검체)에 반응하는 시약을 사용해 반응 정도를 측정하거나 이상 조직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세포모양의 변화를 발견하는 식이다. 과거 수작업으로 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첨단검사 장비와 분석 장비 덕분에 업무가 자동화, 첨단화됐다. 이들의 업무가 세포 단위를 넘어 분자유전의 영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검사도 맡고 있다. 가까운 예로 특정 DNA 및 RNA를 증폭하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검사법을 통해 신종플루를 검사하고, 게놈(Genom) 프로젝트의 지도를 활용해 유전병의 발현 정도를 예견하는 등 질병 예방과 관리 업무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임상병리사가 하는 일은 진출 분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요 업무는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이외에도 실험실에서 약물에 대한 표본을 추출하기도 하고, 약물의 치료 효과 등을 검증하기 위해 동물실험과 관련된 연구를 하기도 한다. 또한 현재 사용 중인 검사법이나 분석법 등을 평가해 개선하거나 새로운 검사법을 연구하는 등의 업무도 수행한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병리사도 있는데, 이들은 동물의 세포에서 검출한 세균이나 기생충을 검사한다.

방사선사가 하는 일은

임상병리사가‘의학적 검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밝힌다면, 방사선사는‘진단도구’를 활용한 검사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둘 다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방사선사는 치료 업무도 많은 편이다.

방사선사의 가장 주요한 업무는 의사의 처방 또는 의뢰에 따라 방사선 촬영 검사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혈관 조영검사나 중재적 시술 등에 필요한 의약품이나 기구 등을 준비하고, 환자의 위치를 조절하는 등 방사선 검사와 치료 업무를 전문의사와 함께 또는 보조적으로 수행한다.

▲ 사진은 연세대(원주) 진단조직학 실습장면

일반적으로 수행되는 방사선 검사에는 X선을 인체에 투과시켜 결과를 영상화시키는 X-ray 검사, 초음파를 인체 내에 보내 반사음파를 영상화시키는 초음파검사, 인체 내부를 일정한 두께의 단면으로 잘라 영상화시키는 컴퓨터 단층 촬영검사(CT, Computed Tomography), 인체의 주요성분인 수소원자핵을 자기공명시켜 조직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영상화시키는 자기공명영상검사(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 등이 있다.

방사선사는 전문영역에 따라 진단방사선사, 치료방사선사, 핵의학방사선사로 구분한다. 진단방사선사는 CT촬영이나 MRI검사를 주로 담당하고, 치료방사선사는 의사의 치료계획에 따라 악성 종양을 제거하는 등의 방사선 치료를 실시한다. 핵의학방사선사는 방사선 의약품을 체내에 주입해서 검사하는 양전자 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검사를 전문으로 한다. 방사선사가 다루는 방사선과 의료기기들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고, 특히 방사선사는 방사선과 같은 위험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임상병리사나 방사선사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치료하는 일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고 간절한 것, 생명과 건강을 선물하는 일이다. 인체에 대한 이해 없이,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 없이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의료 및 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국가에서 인정하는 전문 면허나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은 해당 학과에서 전공공부를 마쳐야만 주어진다.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직업 모두 임상병리학과나 방사선과를 졸업하고 국가면허를 취득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즉 임상병리사는 3년제 전문대학이나 4년제 일반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하고 임상병리사 국가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방사선사 역시 전문대학(3년제)이나 대학(4년제)에서 방사선과를 졸업하고 방사선사 국가면허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진출 가능한 분야와 취업 전망은

학과와 면허, 취업이 매우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특성 때문에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 같은 의료·보건 인력은 취업이 꽤 잘 되는 편이다. 실제로도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생활은 주로 면허시험과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학과에서 배우는 교과목들도 대개 국가면허 시험과목에 해당한다.

진출분야로는, 임상병리사의 경우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임상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특수검사실, 조직병리과, 핵의학과 등을 비롯해 전문 임상검사센터, 임상연구소, 의과대학 연구실, 제약회사 연구소 등이 있다. 공무원시험을 거쳐 보건직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통한 친자 확인이나 유전병의 발현 정도를 분석하는 예방과 관리 업무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임상병리 연구원으로 일하려면 석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하다.

방사선사는 진단방사선과의원,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진단방사선과, 종합검진센터, 의료기기 회사, 산업체 의무실, 보건직 및 의료기술직 공무원 등으로 진출할 수 있다.

두 직업 모두 앞으로 일자리 증가가 기대되고 발전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보건의료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웰빙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고, 의료기관도 점차 확충되고 있다.

특히 임상병리사의 경우 활동영역과 진출범위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근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유전자를 통한 친자 확인이나 법의학 관련 검사가 늘고 있다. 또한 백혈병이나 소아암, 재생불량성 빈혈 등을 치료하기 위해 태아와 산모의 탯줄에 있는 혈액을 보관해 골수외의 치료제를 확보할 목적의 제대혈 관련 실험, 생명보험회사의 심사 업무 등에서도 임상병리사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진출분야도 병원을 벗어나 보건의료 전반으로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교수, 보험심사 업무, 진단기기 개발, 보건의료사무관, 국립과학연구소 등에서 새로운 역할을 기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랑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