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절박감을 느낄 수 있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잠시‘멘붕’이다.‘ 절박감’이라니….

4교시 종료 종이 울리고 진로 교과 교실로도 사용하고 있는 사이버 자기주도 학습실에서 아이들이 빠져 나가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 진로진학상담실 문이 빼꼼히 열리며 한 학생이 들어와 조심스레 묻는다.“ 선생님 시간 있으세요?”사실 점심도 먹어야했지만 2교시 후 쉬는 시간에 먹은 우유와 빵 한 조각 때문인지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 흔쾌히 맞았다.

가만히 보니 이전에 한 번 면담을 했던 학생이다. 그림도 좋아하고 문학도 좋아하는데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던 학생이다. 그때 제시했던 방안 중 하나가 융합이었다. “네가 책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한다면 두 가지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삽화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그 학생이었다.

학생의 고민은, TV의 한 대담 프로에 나온 작가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절박감 때문이라는데 본인은 도무지 절박감이 느껴지지도 않고, 절박감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생의 말에 순간 당황스럽다. ‘절박감이라니…, 이 녀석 뭐야.’

작가들은 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글쓰기 외에 또 다른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 중 일부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너무 간절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잡고 있던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학생은 또 다른 표정으로 질문한다. TV에서 본 그 작가는 생계유지의 마지막 절박감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아하! 어디선가 봤던 기사가 떠올랐다. 그 작가의 경우는 생계 수단으로써의 글쓰기를 위해 대중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글을 썼던 경우였다.

그 작가의 절박감을 네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너와 그 작가는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스스로 절박감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무엇인가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어야 하고, 자신의 기대치와 현재 자신의 수준 차이에서 오는 절박감을 느껴보라고 이야기를 맺었다. 그리고 작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 신문에 연재 중인‘작가의 공간’기획 기사와 도종환 시인의 신문 연재 글을 읽어볼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상담이 끝나고 학생이 돌아간 후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빨리 가서 점심 먹으라는 말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상담실에 들어올 때의 녀석은 학생들이 목숨을 거는 점심을 포기할 정도의 표정이었지만….

텅 빈 교실에 앉아 컴퓨터 속에 남아 있는 수업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오감을 깨우는 체조’, ‘강남스타일’, ‘깨진 유리창의 법칙’,‘ 자기 주도 학습법’,‘ 일만 시간의법칙’,‘ 긍정의힘’,‘ 성적표분석’,‘ 변화의 속도’,‘ 아르바이트와 경제적 자립’ 등이 빼곡하다. 이러한 것들이 학생들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이것들이 학생들의 절박함을 해결할 수단이 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진로교육이란 결국 학생 개개인의 구체성이 결여되면 공허한 이야기로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개개인의 자질을 발견하고 학습 이해 정도를 파악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은 학생들과 최일선에서 직접 마주하고 교육하는 교과 담당 교사들이다. 교실의 학습 장면에서는 학생들이 너무 많고, 교실 밖으로 나오면 선생님들의 업무가 너무 많아 학생 개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 교육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적절한 학급 규모와 교사의 업무 간소화가 절실하다.

학생과 상담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동안에도 다른 교과교사를 하면서 진로교육을 해왔지만 진로진학상담교사로서 2년차 새내기의 절박함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행복한 삶의 방향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진로 수업 설계, 진로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 유발 방안, 진로진학 정보에 대한 전문성, 상담 기법 등 새내기 교사로서 공부할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학생에게 권했듯 일단 시도하고 좌절하면서 절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조철순 서울 문정고·진로상담부장
서울시교육청 두레상담지원단에서 진로상담과 입학사정관 전형 상담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