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는 학원에 가지 말고 여행을 떠나세요. 대학을 가거나 장기적인 전망을 위해서도 그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칼의 노래』를 읽고 웃돌목에 서 보세요. 느낌이 달라요. ‘튀는’ 글도 글쓰기 기술만 익혀서는 쓸 수가 없어요.”

강도현 씨(36세ㆍ사진)는 중학교 학년 때 미국으로 갔다. 교회 전도사였던 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따라 나서게 됐다. 고교 생활과 대학은 미국에서 마쳤다. 미국 리버티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 장교로 군 생활을 마쳤다.
군 제대 직후 삼일 회계법인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다가 억대 연봉을 받는 헤지펀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년을 일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금융의 본질은 무엇일까?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소셜 카페’를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카페 바인)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어려움도 겪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뜻은 좋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자영업의 어려움을 겪어 봤다. 이 경험을 살려 지난해 쓴 책이 『골목사장 분투기』『착해도 망하지 않아』다. 지금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17일, 강 씨가 운영하는 ‘카페 바인’에서 그를 만났다. 진로와 진학을 고민하는 고교생과 학부모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 씨는 미국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리버티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공부를 아주 잘 한 편은 아니었고, 한 중상 정도였어요. 미국으로 가기 전에 『수학의 정석』을 다 보고 갔는데, 미국에 가니까 수학이 너무 쉬운 거예요.

대학에선 경영학을 전공하려고 했었어요.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누구나 다 경영학을 선택하는 거예요. 누구나 다 하는 경영학을 할 바에야 내가 잘 할 수 있는 수학을 하자, 그래서 수학 전공을 선택했어요.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잘 했어요. 저는 미적분학까지는 톱이었어요. 그 다음엔 해석학으로 넘어가는데, 해석학은 증명위주입니다. 그런데 증명이 안 되는 거예요. 문제 푸는 건 잘 했는데…. 수학은 증명이거든요. 그런데 미국 학생들은 문제 풀 때는 빌빌대던 애들이 증명은 잘하더라고요. 거기서 한계를 느꼈어요. 어릴 때 창의적인 교육방법으로 배운 미국 아이들이 대학교 3~4학년이 되니까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4학년 때 아, 나는 수학은 안 되는구나. 미국 애들하고는 경쟁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전공을 경영학으로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를 이끌어 주시던 교수님이 C학점을 받더라도 수학으로 졸업하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조언을 따랐죠. 사실, 수학은 한국에선 크게 대접을 못 받는데, 미국에선 대접을 받아요. 희소성이 있으니까. 대학을 졸업할 때 2천300명 정도가 졸업했는데, 수학 전공자는 12명뿐이었어요. 재밌는 게 부전공은 경영학을 했는데, 경영학은 전부 A학점을 받았는데, 수학은 B, C, B, C 그래요. 전공은 비실비실 했어요.(웃음) 이게 우연의 시작이었죠.”

유학-해군장교-헤지펀드 트레이더 그리고 꿈

강 씨는 2001년 리버티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글로벌 기업 GE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강 씨는 대학 졸업 이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우연의 연속’이라고 했다.

“한계를 느꼈던 수학 전공으로 졸업한 덕에 GE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인턴도 할 수 있었어요. GE입사도 굉장히 우연적인데요. 면접도 안보고 들어갔어요. 11명을 인턴으로 뽑았는데, 400명 넘게 지원했어요. 저만 지방의 로컬대학을 나왔어요. 다른 동기들은 전부 조지아공대나 MBA, 노트르담대 등 이름 있는 대학 출신들이었거든요. 면접인 줄 알고 갔더니 오리엔테이션 자리였어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저를 뽑은 분이 아프리카 출신인데 수학과를 좋아하신대요. 수학과 출신이라는 거 때문에 뽑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 GE는 식스시그마(경영혁신 기법)로 유명했어요. 제가 소속돼 있던 부서장님이 식스시그마 총책임자여서 당시 경영계에서 가장 핫 이슈였던 식스시그마 부서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 인연으로 훗날 삼일 회계법인 에도 들어갈 수 있었어요.”

강 씨는 금융의 본질을 알고 싶어서 외국계 헤지펀드 회사를 찾았다. 3개월 단기 계약직 ‘주니어 트레이더’를 지원했다. 그런데 또 우연의 사건이 일어나죠. 허드렛일로 단순한 엑셀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뭔가를 발견하게 됐어요. 그걸 회사에 보고했더니 말단에 있는 애가 이상하다고 가져온 정보를 시니어들이 유심히 봐 줬어요. 기특하게 봐준 거죠. 정식 트레이더가 되려면 주니어 트레이더로 일하는 몇 개월 동안 순이익을 1억 원을 벌어야 하는데, 저는 실적이 그 절반도 안됐어요. 그런데 새로운 걸 발견했다고 해서 정식 트레이더로 그냥 계약을 시켜줬어요. 그래서 한동안 고액연봉을 받죠. 그런데 트레이더나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은 생산위주의 경제에서 금융경제로 넘어오면서 생긴 직업입니다. 땅이나 자본 같은 생산적 기반이 전혀 없어도 1년에 몇 억씩 벌어요.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은 생산인데, 자연이 주는 자원을 가공해 살아가는 게 본질이고 금융은 그걸 도와주는 건데, 이건 뭐, 금융이 돈을 훨씬 더 많이 가져가니까. 이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일이 게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돈을 가장 많이 벌었던 게 북한이 핵실험할 때였어요. 북한 핵실험 한 날,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려요. 트레이더는 그럴 때 돈을 많이 벌어요. 제가 했던 일은 변동성이 커지면 수익이 더 많아져요. 금융이라고 하는 메커니즘이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생겼어요. 이걸 해결하려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들어왔어요.”

강 씨가 말하는 ‘우연의 연속’, 우연이라고 했지만, 이유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허드렛일이나 작은 일이라도 성심껏 열심히 한 덕분일까.

“저는 노력파는 아니에요. 제 스스로를 봐도 너무 게을러요. 잘 풀려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미’인 거 같아요. 엑셀작업 자체가 재밌기 보다는 그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게 재밌는 거죠. 재미라는 게 저는 그게 재밌는 거고, 다른 사람은 다른 게 재밌는 거잖아요. 자기가 정말 재밌는 걸 찾아서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게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진로 찾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재밌는 걸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학을 선택할 때 대학서열 중에서 자기 점수로 갈 수 있는 최대치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잘 하는 일과 좋아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좋아 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대학 제대로 가고 싶으면 '경험'을 쌓자"

강 씨에게 고교생과 학부모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요즘 대학생들 보니까 진로고민을 많이 해요. 고등학교 때 해야 할 고민을 안 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할 기회도 없었죠. 고등학교 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진짜 문제의식을 갖는 게 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여행도 다니고, 팀플레이 운동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 없이 대학에 가니까, 고등학교 때 했어야 할 고민과 대학에서 해야 할 고민을 같이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은 촉박하고 경쟁구도는 그대로이고. 갈팡질팡, 뭘 해야 할지 몰라요.

방학 때는 학원에 다니지 말고, 여행을 많이 다녀 보세요. ‘진짜 인문학’을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소설가 김훈의『칼의 노래』를 읽고, 울둘목(명랑해협)에 서 있으면 느낌이 달라요. 자기가 이순신이 돼 보는 거예요.

학원에서 배우는 지식보다 여행을 가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이 학생들에게 주는 재미를 넘어서 대학에 진학 할 때도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글을 쓸 때 튀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대학을 제대로 가고 싶으면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