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 더 풍부한 삶을 위한 재미있는 놀이도구이다.

대한민국 직업인과 취업 준비생들이 고민하는 공통분모가 영어다. 대학생들의 취업을 위한 3대 스펙 관리 가운데 하나가 영어다. 취업을 위해서는 3대 스펙인 학점, 자격증, 영어 성적이 필수인데 그 중 영어 성적은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직장인의 승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토익(TOEIC)이 800점이 넘는 사람을 대기업 특별전형으로 합격시킨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웃을 것이다. 사실 예전과 비교해 좋은 교재와 학습자료, 좋은 학원도 많아졌으며, 원어민 교사 및 강사도 매우 많아졌다. 과거 영어교육이 읽기와 문법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회회 중심의 실용영어로 많이 개편되면서 말하기와 듣기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 아울러 국민소득 향상 이후 어학연수, 조기유학, 해외유학 등이 가능해져 전반적인 영어능력은 향상되었다.

하지만 유럽인과 비교해 한국인에게 영어는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며 스트레스 대상이다. 문화적 격차가 크고, 우리와는 다른 억양과 리듬, 어순 등으로 인해 서양인들과 달리 처절한 노력 대비 학습 성과가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한국인들이 영어와 관련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영어는 대학입시의 관문이며, 취업을 위한 통관의 절차이며, 승진 및 연수 등의 기회를 갖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렇기에 한국인에게 영어는 학생시절부터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끊임없이 이고 다니는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영어를 스트레스가 가득 담긴 애물단지로 생각한다면 평생 영어를 잘 할 수 없으며, 설령 잘한다고 해도 상처가 많은 승리가 될 것이다.

영어는 가장 멋진 놀이도구

사실 영어를 스트레스로 만드는 것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영어는 스트레스가 듬뿍 담긴 애물단지가 아니라 재미가 듬뿍 담긴 보물단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만든 가장 멋진 놀이 도구가 뭘까? 과거에 이 질문을 했다면 텔레비전이 많이 나왔을 것이고, 지금은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이란 대답이 많이 나올 법하다.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바로 ‘언어’다.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멋진 놀이도구다. 우리는 언어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노래가사로 감정을 읽고, 언어로 감동을 받으며, 언어를 사용하여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언어가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다. 모국어부터 시작해 외국어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영어는 외국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국제 공용어이므로 가장 많이 익히고 배우는 것이다.

사실 영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영어는 즐기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 많은 책, 음악, 영화들이 펼쳐져 있다. 바로 외국어를 잘 하면 그 많은 재미난 것을 더욱 풍부하게 느끼고 즐기고, 맛볼 수가 잇다. 생각해 보라! 우리말 더빙보다 원어로 즐기는 영화가 훨씬 재미있지 않은가? 아무리 통역해도, 번역해도 전달되지 않는 그 느낌을 외국어를 잘하면 그대로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언어는 결코 완벽히 통역되지도, 번역되지 못한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흔히 채소 가운데 보라색 가지를 영어로 에그 플랜트(egg plant)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서양의 에그 플랜트는 한국말로 가지로 번역되지만 사실 다른 것이다. 서양 가지는 말 그대로 달걀모양이고 한국 가지는 길쭉한 오이모양에 가깝다. 번역이나 통역이 되는 순간 많은 원래의 의미와 언어의 맛, 느낌, 지식 등이 정확히 전달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해 재미가 덜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특히 국제공용어인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영어의 세계는 매우 넓다. 영어라고 다 같은 영어가 아니다. 영국 사람들은 자신의 영어를 ‘잉글리시(English)’라고 표현하다. 반면 미국의 영어는 ‘아메리칸 잉글리시(American English)’로 구분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마다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한국의 커피 가운데 ‘아메리카노(Americano)’는 호주 영어로는 ‘롱 블랙 커피(Long black coffee)’가 되며, 영국에선 ‘블랙 커피(Black coffee)’가 된다. 한국의 지하철도 영어로 미국 및 한국은 ‘서브웨이(Subway)’, 영국은 ‘언더그라운드(Under ground)’, 프랑스는 ‘튜브(Tube)’라고 표현된다.

영어는 이처럼 영어 국가마다 서로 다른 표현법을 가진, 재미있는 언어다. 이 언어를 우리는 처절하게 공부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재미있는 놀이도구로 즐겨야 할까? 영어는 결코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가장 멋진 놀이도구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아는 진정한 영어교육의 이유다. 물론 한국적 교육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가 설득력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필자는 굳건히 놀이도구로 여길 것이다.

흔히 영어를 갖고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제1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다.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제1조건은 ‘열린 사고(open mind)’다. 열린 사고의 기본은 나와 다른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다. 이게 글로벌 인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앞서 제시한 지하철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듯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생각들을 존중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사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쉽지 않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서로를 느끼기에, 자신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 미묘한 생각 차이가 성공적 비즈니스 수행에 있어서 언어장벽보다 더 큰 장벽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영어는 직업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될까? 직업세계에서 영어는 폭넓게 활용되는데 특히 정보 및 자료 수집에 많이 활용된다. 즉 말하기 능력보다 읽기 능력이 더 많이 활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출장이나 외국인 응대 등에 영어회화가 많이 활용되기는 하나 특수한 직업을 제외하고는 외국인과 그렇게 자주 접하며 이야기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직업으로 통역가, 번역가, 외교관, 외환 딜러, 비행기 승무원, 바이어, 컨벤션 기획자, 호텔리어, 글로벌 지역전문가(영어권), 국제기구 종사자, 항공기 조종사, 변리사, 항공교통관제사, 자연과학·사회과학 연구원, 영어 교사·강사 등이 있다. 이들 직업의 영어능력은 크게 구어 중심의 능력과 문어 중심의 능력으로 구분된다. 통역가, 비행기 승무원, 바이어, 컨벤션 기획자, 호텔리어, 항공기 조종사는 영어 가운데 말하기가 중요한 반면 번역가, 자연과학·사회과학 연구원 등의 직업은 말하기보다 읽기가 중요하다. 번역서나 논문의 경우 전문용어가 많고, 문장의 내용 및 구조가 어려워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종사자 및 영어 교사·강사의 경우 읽기, 쓰기, 말하기 등 모두 실력을 골고루 겸비해야 된다. 특히 국제기구 종사자의 경우 영어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되므로 쓰기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과

직장에서는 말하기보다 읽기 능력이 더 많이 활용돼

끝으로 우리가 영어에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승진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의미만 부여한다면, 영어는 영원한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는 궁극적 목적은 그런 현실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의 의미가 아니다. 영어는 새로운 지식,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 더 풍부한 인생, 더 즐거운 인생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다. 영어라는 보물단지 속에는 흥미진진한 소설이 있고 아름다운 영화와 흥겨운 팝송이 있으며, 다른 국가의 재미있는 친구가 있으며, 더 많은 재테크 정보가 있으며, 우리가 궁금해 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들도 있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 더 풍부한 삶을 위한 재미있는 놀이도구이다. 이것이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진정한 이유다. English makes your life better and richer!

김상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부연구위원
성균관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했다. 직업, 진로와 관련해 200여 편의 논문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주요 저서로 『톡 까놓고 직업 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