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활동 시간을 통해 내가 각 반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 시간이 전부다. 물론 개별적으로 진로상담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만나는 한 시간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도 진로교사라면 누구나 하지 않을까

지난해 나는 『진로와 직업』 교과서 목차 순서를 지키면서 한 해를 보냈다. 나에 대한 이해, 직업정보 탐색, 진로결정, 진로계획 등 매우 숨차게 아이들을 몰아세웠다. 그 결과 나와 아이들은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딱히 남은 건 없는 것 같고, 계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끝없는 부담감이 늘어만 갔다. 아이들도 스스로 진로 정보를 찾기보다는 진로교사를 통해 뭔가 쉽고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학기부터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진로활동을 진행했다.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 과연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나의 의문은 계속 꼬리를 물었고 달라져야 할 진로활동의 모습을 막연한 상상 속에서 그려나갔다.

그때 나에게 들어온 두 글자가 ‘행복’이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도 행복해야 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삶만이 행복한 삶은 아니다. 진로활동의 과정이 행복할 수 있다면 누가 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방법이 좋은지 발견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방학. 쉬고도 싶었지만 달라져야만 하는 내 수업을 위해 ‘행복’과 관련된 연수를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고 말았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행복교과서’는 나의 의문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행복교과서의 내용을 진로교육 목표에 맞춰 융합한 진로교육이라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깨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학기 시작 전, 수업을 위해 아이들에게 나눠줄 파일을 미리 준비하고 만들면서 진로활동의 활동집 모음 이름을 ‘행복터치’로 했다. 행복을 터치하는 아이들.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지…. 생각은 적중했다. 조금만 힘들어지면 귀찮아하고 엎드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됐고 스스로 행복터치 파일을 챙기고 활동의 내용에 대해서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늘 어났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생각과 변화의 관점들을 콜라주(Collage) 작업을 하면서 진지하게 몰두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감사하기’를 훈련할 때는 감사한 내용을 포스트잇에 붙여가면서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감사임을 알게 됐고 부모님께,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음을, 수업을 들을 수 있음을, 친구가 곁에 있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은 날씨가 모두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알아가는 일은 아이들과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했다.

‘행복서약서’ 낭독을 시작으로 시작되는 행복한 진로수업의 핵심은 ‘행복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행복’이라는 집에 우리 아이들은 개성과 끼를 살려 진로마당을 만들고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신의 ‘꿈방’을 만들어갈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 행복한 삶,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오늘도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9가지 행복 터치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은혜정 서울 광신정보산업고·진로진학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