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마봉에서 본 사량도. 탁트인 쪽빛 바다가 보기만해도 시원하다

여름의 한 가운데다. 본격적인 피서 철이다. 지루한 장마 끝이라 땡볕이 더 따갑다. 이런 여름, 모든 것을 잊고 훌훌 떠나보고 싶은 것은 너나 없는 바람이고, 특히 청소년들의 로망일 것이다. 산도 좋고, 강도 좋고 바다도 좋고 섬도 좋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너무 무리한 바람일터.

그래도 그 가운데 몇몇만이라도 취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떨까. 경남 통영의 망망한 남해 바다 사량도가 바로 그 곳이다. 여기서는 바다를 만끽할 수 있고, 뻥 뚫린 해안도로를 따라 트래킹도 할 수 있고, 광대하면서도 오밀조밀한 등산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량도는 행정구역상 통영시에 속하지만, 남해군 창선도와 통영시 미륵도의 중간쯤에 자리한, 3개의 유인도와 6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1.5km 가량의 거리를 두고 이웃한 상도와 하도로 나뉘어져 있는 섬이다. 상도와 하도 사이에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 때문에 사량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뱀도 많은 섬이다.

윗섬인 상도는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지리산(지리망산),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이 능선으로 연결돼 있어 산행코스로 유명하다. 아랫섬인 하도는 볼락, 노래미, 감성돔 등 다양한 어종이 낙시꾼들을 유혹하는 갯바위 낚시 포인트가 많아 낚시꾼들의 구미를 돋우는 곳이다.

사량도에는 섬을 일주하는 총 길이 17km의 해안선도로가 있다. 이곳을 걸어보는 트래킹이 등산과 함께 사량도 탐방의 묘미로 자리 잡고 있다. 금평항-옥동-돈지-내지-대항으로 해서 금평항으로 다시 회귀하는 해안선도로 트래킹은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특히 돈지에서 내지까지 죽도. 농개도. 두미도를 내려다보면서 걷는 해안길이 절묘하다. 시야가 트인 곳마다 바다 전망대가 서 있어 다리품을 쉬었다 가는 푸근함도 있다.

트래킹이 부담스럽다면 승용차로 하면 된다. 승용차로 섬 일주를 한다면 30분이면 족하지만 절경에 발목 잡혀 차를 자꾸 세우다 보면 한 시간도 모자랄 수도 있다. 금평항 마을 안쪽에는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를 최영장군 사당이 서있다. 250년 된 팽나무 가지 사당을 감싸고 있으며, 곁의 하얀 교회건물이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마을 고샅길을 한갓지게 걸으며 한가로운 어촌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또 다른 묘미다.

사량도는 두 개의 우람한 산을 자랑하는 만큼 등산으로도 그 명성이 높은 곳이다. 지리산(298m)과 불모산(399m)이 그 것인데, 특히 지리산은 한국 100대 명산에 끼일 정도로 그 명성이 높으며, 산꾼들 사이에는 ‘한려해상의 도봉산’으로도 불린다. 지리산은 지리망산(智異望山)으로도 불리어진다. 맑은 날이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냥 지리산(智異山)으로 부른다.

▲ 사량도 종주 등산코스에 있는 출렁다리

사량도 등산은 돈지리를 기점으로 지리산-불모산-가마봉-연지봉-옥녀봉으로 이어지는 8km 종주코스로 4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데, 산과 봉우리 아래 펼쳐진 숲길도 좋다. 북동쪽 금북개마을에서 오르기도 한다. 산행 들머리인 돈지마을에서 보면 마을 뒤쪽으로 근육질 암반으로 형성된 지리산이 병풍처럼 서 있으며, 산 중의 칠부능선까지 올라간 다랑이 논이 다정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산을 오르면서 아래로 다람쥐 모양의 농개도, 철새처럼 입을 쭉 내민 죽도와 멀리 남해섬, 그리고 삼천포대교까지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은 아마추어 산행객의 성취욕을 자극하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불모산까지의 산길이 공포감과 재미가 황금비율로 조합된 스릴이 연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산은 높이가 비슷한데다 주릉 좌우로는 천 길 낭떠러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암반과 해송 숲이 경쟁하듯 등장하며, 촛대바위와 남근바위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불모산에서 가마봉-연지봉-옥녀봉까지 이어지는 암반 능선길이다. 철사다리와 수직로프 사다리 오르기, 밧줄타기 등 마치 유격훈련장을 연상시키는 변화무쌍한 코스가 산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위험한 코스는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우회길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마치 희로애락의 인생역정 같은 코스를 타고 지나 가마봉(301m) 아래 전망대에서 서면 다랑이 논과 옥동마을, 그리고 상. 하도를 잇는 해협인 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마봉에서 연지봉까지는 가파른 암벽의 연속이다. 그래서 산행객들은 이 지점에서 제일 흥분한다. 밧줄 등을 타고 암벽 면을 오르는 스릴이 너무도 재미있는 것이다. 이 구간을 지나 옥녀봉에 이르는 구간에 사량도 산행의 절정 감을 맛볼 수 있는 구름다리가 있다. 이 구름다리로 옥녀봉을 지나면 사량도 산행은 사실상 끝이다. 옥녀봉은 아버지의 욕정을 피하려고 절벽에 몸을 내던진 ‘옥녀’의 전설이 서려있어 애잔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곳에 서면 아래로 진촌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이 여름, 바다가 그리울 때, 그리고 광활한 바다를 보면서 아기자기하면서도 스릴 만점의 종주등산이 하고 싶을 때, 시원스레 뚫린 해안도로를 홀로 걷고 싶을 때, 그리고 섬 속에서  육지와 절연된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때 사량도로 가는 배를 타보는 게 어떨까.

◆사량도 가는 길 - 통영항 여객선터미널과 삼천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 운항. 대중교통편은 통영행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진주행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진주 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까지 가서 삼천포행 버스를 갈아타도 된다. 또 통영시 도산면 가오치 여객선터미널과 고성군 용암포 다리호 선착장에서도 카페리가 운항하고 있다. 배편은 동. 하절기, 주중. 주말에 따라 운항시각이 달라지므로 사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문의; 통영시청 관광과 055-650-4613, 사량면 사무소 055-650-3624), 가오치 여객선터미널 055-647-0147)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