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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와 이념이 할퀸 남과 북…분단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는?
영화로 읽는 한국근현대사②. 6·25 한국전쟁
2013년 08월 30일 (금) 11:48:25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영화화한 「작은연못」의 한 장면.

얼마전 한 언론사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 69%가 6·25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응답해 사회에 충격을 줬다. 1953년, 대한민국의 허리를 반으로 갈라버린 6·25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이, 정전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옅어지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조사 결과였다.

2013년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전협정의 국제법적 의미는 ‘국제법상 전쟁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전쟁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단지 군사적 교전행위만을 중지한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반도 정전협정 이후 반세기가 훌쩍 지나버린 2013년 여름, 영화는 6·25 한국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동족상잔의 비극-이념의 격론장

2004년 개봉해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의 비극을 한 ‘형제의 슬픈 운명’이란 프리즘으로 들여다봤다. 형 진태(장동건)는 동생 진석(원빈)의 대학진학을 위해 학업도 포기하고 구두를 닦으며 홀어머니를 모신다. 그와 결혼을 약속한 영신(故 이은주) 역시 이미 가족의 일원처럼 살갑게 지낸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던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외가 서울시내에 뿌려지고, 형제는 징집당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어머니에게로 돌려보내겠다는 생각에 진태는 대대장을 만나 담판을 짓는다. 혁혁한 전공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전역시켜주겠다는 대대장의 말을 들은 진태는 이후 모든 전쟁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전선의 최선방에서 싸운다. 형의 위험한 전투가 자신을 위한 것임은 꿈에도 모르는 동생은 그런 형이 밉다. 처음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형제… 후퇴 직전 진태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우리 가족 전부야. 내 꿈이고 어머니 희망이야. 너 공부시키려고 학교 관두고 구두통 메고 다녀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어머니 시장통에서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국수 팔아도 너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살아."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한 진태는 국군에 대한 극도의 증오로 북한군으로 전향한다. 그의 전향에는 이데올로기가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가족에 대한 애끓는 마음이 동생과 약혼녀를 죽게 한 국군에게 향한 것일 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형제의 감정의 흐름을 각기 다른 전투씬으로 구현해냈다. 이전 영화에서 보이던 전투 장면들은 장소나 전투 장면에 대한 묘사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전투 장면은 그 장소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낙동강 기습 공격이 전형적인 전쟁의 격전지를 보여줬다면, 이후 벌어지는 평양 시가지 전투는 학살의 느낌을 보이며 카메라는 끊임없이 직선적으로 전선을 전진한다. 그리고 중공군의 인해 전술로 인한 후퇴와 두밀령 전투 등에서도 역시 카메라는 계속적인 하강의 모습을 보인다. 10년이 지났지만 한국전쟁의 각 전투를 이렇게 다채롭게 표현한 영화는 지금까지도 드물다.

6·25 한국전쟁은 보통 4단계로 구분한다. 북한 인민군이 남침 후 4일 만에 서울을 함락, 3개월 만에 경상도 일부를 제외하고 한반도 대부분을 장악한 시기가 1단계다. 2단계는 유엔군의 개입으로 인천상륙작전으로 통해 전쟁 발발 4개월 만에 서울을 탈환, 평양을 점령한 시기다. 아시아의 교두보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확장하고자 한 미국의 속내가 반영된 군사적 개입이었다. 3단계는 유엔에 위협을 느낀 공산주의 진영, 중국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돼 1951년 휴전 교섭에 들어간 시기다. 마지막 4단계는 38선으로 전선이 고착되고 휴전회담이 진행되며 전방을 제외한 후방 지역이 복구에 나서며 삶을 회복하는 시기이다. 열강들의 이권 다툼 속에서 1년 동안의 치열했던 전투를 「태극기 휘날리며」는 충실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해 낸다.

순박한 피난민들-미군이 빨갱이 놈들 다 잡을껴

「태극기 휘날리며」가 전선의 최전방을 오가며 사실적인 전투 장면을 그렸다면, 상대적으로 전쟁의 영향권에서는 떨어진 후방의 민초들의 삶을 다룬 영화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상우 감독의 2010년 작품 「작은 연못」이다. 전쟁 발발 한 달 후,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실제 벌어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로 정은용의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다리미디어 刊., 2010)가 원작이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2005년에 와서야 유족들의 긴 요구에 희생자 218명, 유족 2천170명을 공식 인정했다. 4년에 걸친 현지답사, 3년이란 긴 제작기간, 송강호, 강신일, 故 박광정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재능기부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쟁은 후방에서도 그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는 사실을 충격적인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위 사진은 한국전쟁 발발 한 달 후 충북 영동군에서 미군의 양민학살 사건이 벌어진 노근리 쌍굴다리 전경.
노근리 주민들은 트럭에 실어 남쪽으로 피난시켜준다는 미군의 말에 임진년 난리도 피했던 가마봉을 내려오지만, 곧이어 미군에 하달된 명령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자는 모두 사살하라(1950년 7월 24일, 제1기 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통신-미 국방성 기밀해제 문서)’로 인해 노근리 쌍굴다리와 기차길에서 무차별 사격을 받게 된다. 다리가 잘린 소녀, 죽은 남편 옆에서 곡을 하다 후발 사격에 목숨이 끊어지는 부인, 엎드려! 소리에도 자식을 구하러 가는 아버지, 죽은 아이에게 옷을 덮어주다가 즉사한 아버지, 시신을 수습하다 폭격에 일순간 몰살당한 가족, 죽어버린 어머니 옆에서 울다가 쌍굴다리로 도망가는 어른들을 따라가는 아이… 한바탕 미군의 포격이 지나가고 겨우 살아남아 쌍굴다리로 피신한 마을 사람들이 주고 받는 대화는 더 슬프다. “누가 쏘는 겨?”, “미군이 쏘나봐요.”, “빨갱이가 쏘것지, 미군이 도락구(트럭) 보내준다믄서…”

밤이 깊어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젊은이들을 탈출시킨다. 옷을 벗기고 온 몸에 개울 진흙을 발라 위장을 하는 그들에게 마을 어른은 족보를 건네며 “살아서 대를 이어라”고 말하고, 여자 친구는 “오빠는 머시마잉께 꼭 살아야 해, 여기서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마찬가지니께 어떻게든 나가.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한테 얘기해”라며 남자 친구의 등을 떠민다. 떠나는 자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삭이는 울음이 적막한 밤에 더 크게 들린다. 아이는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다.

전쟁 통에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쌍굴다리에 숨은 새벽, 충격으로 조산하게 된 어머니는 아기가 첫 울음을 터뜨리자 다시 시작된 미군의 사격으로 젖 한 번 물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진다. 아기의 울음이 다른 어린 아이들에게 전염돼 미군의 총포가 불을 뿜기 시작하자, 마을 주민들이 성화다. 애 입 다물게 하라며… 전쟁통에 태어난 아기는 축복받을 권리 조차 없다. 아내가 아기만 남기고 죽고, 남편은 황망하게 아기를 안고 밤을 지샌다. 젖을 먹지 못해 계속 울어대는 아기… 아기가 울 때마다 총알이 쌍굴다리에 빗발치고, 몇몇이 또 죽어간다. 어스름히 새벽이 밝아올 무렵, 아버지는 아기를 개울가로 데리고 나가 조용히 물에 담궈 생명을 끊는다. 살아 있을 더 이상의 이유가 없는 아버지도 곧 미군의 총탄에 맞고 아기의 뒤를 따른다.

노근리 주민들이 가마봉으로 피난갈 때도, 쌍굴다리에서 죽어갈 때도 그 푸르른 하늘에서는 어미 혹등고래와 새끼 혹등고래가 평화로이 유영한다. 왜 죽어가는지도, 누가 그들을 죽였는지도 모르는 전쟁터의 인간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몽환적인 장면이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2011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든 후반기 1953년의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재구성했다. 북한 인민군과 내통한다는 첩보로 애록고지에 파견된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와 2년 만에 만난 친구 김수혁 중위(고수). 두 친구는 교착 2년 동안 50만 명의 국군이 죽어가며 뺏고 뺏기길 지루하게 되풀이해온 애록고지에서 의미 없는 전투를 계속한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드디어 모두가 바라던 정전협정이 체결됐고,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들뜨지만, 정전협정의 효력은 서명 후 12시간 후. 이 시간 안에 점령한 고지가 남한, 북한의 영토가 되기에 애록고지는 전에 없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100m도 채 안되는 거리. 미공군의 폭격이 마지막 전투의 개시를 알릴텐데 안개가 자욱하다. 폭풍전야의 전운이 감도는 애록고지. 갑자기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감상에 젖어가는 국군. 지휘관이 노래를 그치라고 다그치는데, 알고 보니 그 노랫소리가 북한쪽에서 들려온다. 안개 속에 서로의 감정이 같음을 공유하는 국군과 인민군. 그러나 안개는 걷히고 미공군의 폭격이 시작된다.

중국 혁명사 3부작을 쓴 왕수쩡은 그의 최근 저서 『한국전쟁-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글항아리 刊에, 2013)서 정전협정 체결 후 12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정전협정에 서명한 후 12시간이 지날 때까지 전체 수백 킬로미터의 전선에서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맹렬한 총포 소리가 울려 펴졌다. 예광탄, 조명탄 그리고 신호탄이 한반도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였고, 흡사 새로운 대규모 전투가 또 시작되는 것 같았다. 전쟁의 쌍방은 모두 최후의 12시간까지 자신이 보유한 강력한 화력을 과시하고 불굴의 투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7월 27일 오후 10시, 전선에서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참으로 기괴한 ‘갑작스러움’이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전쟁의 아픔

헐리우드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은 그의 세 번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의 들켜서는 안 되는 우정을 다뤘다. 장진 감독의 1999년 작 「간첩 리철진」은 북한 간첩을 남한의 여대생이 짝사랑하는 이야기다. 김종진 감독의 「만남의 광장」(2007)으로 다소 엉뚱하게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다뤘다. 1991년 일본 세계탄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현정화와 리분희의 실화를 다룬 「코리아」는 그 둘의 뭉클한 이별 장면으로 새로운 남북 이산가족의 모습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이 외에도 6·25 한국전쟁이 초래한 분단의 아픔을 그린 영화는 무수히 많다. 통일을 바라는 남한의 감상적인 접근은 차치하더라도, 영화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통일에 대한 당위성과 기대다. 과연 북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북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직도 열강인가. 그렇지 않으면 북한을 더 이상 우리의 동포, 형제로 인식하지 않는 우리 자신인가.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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