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졸업하고 국제복장학원에 입학하면서 패션디자인을 배웠다.  2000년 한일 월드컵 기념 일본 초청 패션쇼를 했고, 2002년부터 지금까지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다.

“10대 때 품은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죠.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젊음의 순정을 몸 바쳐 연극을 사랑했던 젊은이가 있다. 무대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끄집어내는 실험의 장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열정은 영혼마저 홀려내며 무대와 관객을 적시는 듯했다. 희곡을 사랑했던 문학 소년은 대학을 진학하면서 연극에 빠져들었다. 20대 청년이 된 소년은 굶주리고 살아갈 앞날이 두려웠다.

첫 공연의 막이 오르자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청년은 무대를 등지고 내달렸다. 누구보다 괴로웠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야하는 두려움. 다음 선택이 무엇이 됐든 연극을 포기했던 자신을 욕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활을 걸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패션 디자인에서도 서서히 자기만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문학과 연극에서 꿈길을 내딛었던 소년의 열정은 훗날 한글 디자인을 세계적인 의상으로 재창조했다.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은 그렇게 우뚝 일어섰다.

 이 디자이너는 최근 패션 디자인을 넘어 도자기, 찻잔, 핸드폰 등 캘리그래피(손으로 그린 그림문자)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디자이너의 캘리그래피 디자인은 이른바 콜레보레이션 디자인(상품에 디자인을 입힌 공동제작품)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상봉표 디자인’의 전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패션디자인 입문 초기부터 이 디자이너는 한국의 ‘매듭’을 패션에 접목하는 등 한국 정서와 문화를 세계에 내놓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디자이너에게 성공의 열쇠는 열정과 도전이다. 연극을 내려놓고 방황하던 어느 날, 우연히 본 신문광고를 따라 국제복장학원(2년과정)을 찾았을 때가 20대 후반. 심지어 이 디자이너는 그 나이까지 다림질 한번 해 본 적조차 없었다. 경쟁과 성공이 생존의 조건처럼 여겨지는 요즘 시대에 이 디자이너와 같은 삶의 행적은 불가능한 일로 치부되기 일쑤다. 패션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라는 양갈래 길을 하루에도 열두 번 씩 오가는 최유진 씨(가톨릭대 의류학과·3)가 이 디자이너를 만나 작품세계의 심급을 만들어 가는 비결을 물었다.
 최 씨는 내년이면 졸업반이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사실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는지조차 막연하다. “3학년이 되도록 디자이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게 우리 학생들의 전반적인 문제에요!” 이 디자이너는 시작부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눈높이를 자기 옷 입는 것에 맞추고 있어요. 허름한 티셔츠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닐지언정 생각은 항상 최고의 옷을 그려야죠. 디자이너는 어떤 옷을 만드는지 판매는 어떻게 하는지 고민의 수준을 더 구체적으로 넓혀 가야 합니다. 감각에 눈 뜨고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돼요.”

 기술을 익히는 것이 디자이너의 기본자질이라고 강조하는 이 디자이너는 전공 2학년까지 진로설정을, 3~4학년은 디자인 공부에 몰입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최 씨의 말 못할 고민 중 하나인 해외유학에 대해서도 “디자이너면 외국 유학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며 “학부과정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면 외국 학생들과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공과 적성의 일치여부를 두고 고민에 휩싸이는 후배들이 많다는 말에 이 디자이너는 “요즘 대학생들은 진정한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되물었다. “스펙쌓기나 장학금을 위해서 학점 편하게 따는 수업을 위주로 수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학생들은 꿈과 도전, 성취를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후학들에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빨리 포기하라. 그리고 과감히 도전하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너무 볼 것도 많고 고민할 일도 많기 때문에 쉽게 눈이 돌아가요. 조그만 변화에도 꿈이 바뀌죠.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듯 최 씨에게 도전과 열정을 강조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첫손에 꼽는 것은 ‘열정’이죠. 꿈을 꾸고 노력하세요. 언제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어요. 남들보다 더디게 간다는 데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