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입시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매주 책을 한권씩 읽고 주말에 2시간 수업을 듣는 것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다른 친구들이 주말에 TV를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는 시간에 저는 책을 읽고 수업을 듣는 거예요. 쉬는 방법이 다를 뿐인 거죠.”

1년동안 다양한 책 읽으며 자아 발견
김민아(부산서여고 2년)양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을 찾는다. 허아람 대표가 운영하는 독서토론 수업 ‘아람샘’을 듣기 위해서다. 학교 계발활동 지도 선생님이 인디고 서원의 청소년 토론 프로그램인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에 참여해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다양한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게 됐죠. 그랬더니 제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그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는데,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어요.”

부산 학원가에 자리잡은 인디고 서원에서는 참고서를 팔지 않는다. 대신, 매주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는 ‘실험’이 계속된다. 사진은 ‘주제와 변주’에 참여한 청소년들.

중1 때부터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김신혜(18세)양은 2년 전 어머니의 ‘강권’으로 인디고 서원과 인연을 맺었다. “엄마가 교육에 적극적인 편이세요. 인디고 서원에 오기 전에 독서클럽을 두 곳이나 다녔는데, 주입식이어서 너무 답답했죠. 당연히 엄마가 인디고 서원을 권할 때도 별 기대가 없었어요. 그런데 책의 저자를 초청해 토론하는 ‘주제와 변주’ 행사에 참여하고는 생각이 확 바뀌었어요. 진지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고요.”

신혜는 곧바로 아람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선생님이 있고,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데 행복을 느낀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 스스로 열정적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람샘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아람샘 수업은 제 자신을 찾게 하고, 저에게 열정을 가질 수 있게 했어요. 지금은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요.”

물론 가끔 어려운 책을 만나면 힘들다. 기자가 인디고 서원을 찾아간 지난 11월 21일 수업 교재는 비교문학자 류점석씨의 『생명공동체를 향한 문학적 모색』. 학생들 책엔 모르겠다는 표시의 밑줄이 빽빽했다. 하지만 신혜는 서두르지 않는다. “어른들이 이런 어려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양한 책을 읽고, 그러면서 배경지식도 쌓여서인 거잖아요. 우리는 서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어렵고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는 건 당연한 거죠.”

국내 첫 청소년 인문학 서점의 실험
국내 첫 청소년 인문학 서점인 인디고 서원은 지난 2004년 8월 부산의 학원가 골목에 첫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날마다 반짝거리는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람샘 수업에서 책을 읽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저자를 초청해 토론을 나눴고(주제와 변주), 더 많은 또래 친구들과 교실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토론모임을 열었으며(정세청세), 서로가 나눈 고민과 대화를 더 많은 친구들과 나누고파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인디고잉). 지난해에는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지그문트 바우먼 등 세계적 석학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었고, 그들을 다시 한국으로 초청해 북페어 행사를 개최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인디고 서원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님과 갈등을 겪기도 했고, 밤 11시 자율학습을 마친 후 자정을 넘겨가며 인디고잉 기사를 써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디고 아이들은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스스로 책임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이다. 인디고 아이들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권지희 기자 editor@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