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학교에서 조만간 계열을 선택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과학 과목(특히 생물)에 관심이 많지만 수학 성적이 그리 좋지 않고, 그나마 국어 과목은 성적이 괜찮게 나오는 편이라 처음엔 당연히 문과로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이과가 문과보다 대학 들어가기가 수월하다고 웬만하면 이과를 선택하라고 하셨어요. 또 지난 주 진로수업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할 때 이과 쪽 일자리가 더 많고, 보수도 인문계열보다는 자연계열 쪽이 더 많다고 들었어요.
어릴 땐 교사나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아직까지 딱히 어떤 직업을 하고 싶다 확실히 정하지는 못했거든요. 조리사다, 아나운서다, 디자이너다. 자기 진로를 확실히 정한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슬슬 초조해져요. 문과로 가면 어느 정도 성적은 유지할 것 같은데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고, 이과로 가자니 좀 끌리긴 하지만 자신이 없어요. 어느 쪽으로 결정해야 후회가 없을지 너무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일반고 1학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계열 선택의 시간을 앞두고 고민이 많군요. 21세기 융·복합시대를 맞아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2017년부터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런 고민은 불필요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계열이 구분돼 있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학생의 향후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발점이라 신중한 선택이 요구됩니다. 교과목 성적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고 싶은 것 같네요. 그런데 아직까지 자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계열 선택의 첫 단계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것입니다. 성적이나 취업, 보수만 따져보고 섣부른 선택을 하게 되면 후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열을 선택하는 문제는 진학할 대학의 학과 및 그 학과에서 다루게 될 커리큘럼과 직결되고, 향후 갖게 될 직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과 이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진지한 자기 탐색을 통해 신중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탐색을 하려면 ‘나는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그렇게 살기 위해 어떤 일에 종사하면 좋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밖에도 자신의 강점, 성격과 성향, 가치관 등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해 보는 게 좋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지, 뜻 깊고 보람 있었던 경험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했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잘했다고 칭찬받았는지 생각해 보고 목록을 작성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의 흥미, 적성, 성격, 가치관 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면 ‘커리어넷’(www.career.go.kr)이나 ‘워크넷’(www.work.go.kr)에 접속해 다양한 직업 심리검사를 받아보길 권합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비롯해 나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직업이 어울릴 것 같은지 물어보고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신을 파악하는 한 방법이지요.

과학 과목에 흥미가 있고 대입이나 취업 면의 이점 때문에 이과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수학 성적에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것 같은데요. 담임선생님 말씀처럼 일반적으로 이과가 대입에 더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자연계열에 속한 학과들이 지원자 대비 선발 인원이 많기 때문이죠. 대졸자 취업률 통계를 보더라도 자연계열 졸업자가 인문계열 졸업자에 비해 취업이 용이하고 평균 보수도 높습니다. 전공 활용 면에서도 자연계열 졸업자가 유리한 편입니다. 인문계열 졸업자는 취업 시 전공이 불일치한 경우가 많거든요. 진로선생님의 말씀처럼 대입과 취업 면에서만 본다면 현실적으로 이과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겠지요.

안타까운 것은 많은 학생들이 ‘수학’이라는 장벽에 막혀 종합적인 자기 이해 노력도 없이 문과로 진로를 결정해 버린다는 점입니다.  주변의 조언을 참고하고 유·불리를 따져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법입니다. 충분한 진로 탐색 과정 없이 주변의 이야기만 듣고 설익은 의사 결정을 내리거나, 성적에 따라 손쉬운 선택을 하고 나서 막상 대학 진학 후 적성이 안 맞는다는 등의 이유로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하지요. 충분한 자기 탐색의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내가 나아갈 방향이 되고, 방향을 알게 되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이런 과정을 통해 나에게 맞는 최고의 선택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좋아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이 되고, 하고 싶은 일은 잘하는 일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성적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것이 좋아하는 과목과 분야라면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꾸준히 성적이 향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웃라이어』를 쓴 말콤 글래드웰도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의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1만 시간의 노력과 열정을 다해 어느덧 전문가가 돼 있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직까지 하고 싶은 직업을 정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학생이 현재 좋아하거나 잘하는 과목을 써보고 이와 연관된 직업을 찾아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국어’ 과목이라면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연관되겠지만 시인·소설가·수필가·칼럼니스트·논술강사·기자·방송작가·시나리오작가·출판편집자·번역가·판사 등 글쓰기와 관련된 직업과, 성우·아나운서·기상캐스터·배우·개그맨·쇼핑호스트·노무사·통역가·검사·변호사·교사·학원강사·상담전문가·임상심리사·심리치료사·언어치료사 등 말하기와 관련된 직업, 그리고 두 가지 모두와 관련된 교수·인문사회과학연구원·경영컨설턴트·광고 및 홍보전문가·통상전문가·큐레이터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직업에 종사하려면 어떤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그 학과에 진학하려면 어떤 계열을 선택하면 될까 이런 식으로 진행해 가는 거죠.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무엇인가 알아보고 싶다면 ‘나의 특성에 맞는 직업 찾기’(워크넷)를, 계열에 속한 다양한 학과 정보를 얻고 싶다면 『2014 미래의 직업세계 학과편』(커리어넷)을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직업카드나 학과카드 분류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자신의 흥미에 맞는 직업과 계열, 분야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그만두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 과정을 생략한 채 무턱대고 선택한다면 학생의 말처럼 어느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후회막급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하지요. 충분한 자기 탐색의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내가 나아갈 방향이 되고, 방향을 알게 되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이런 과정을 통해 나에게 맞는 최고의 선택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조기연 서울 중앙여고·진로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