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로‘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이후 다룰 내용들은 일반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고, 쉽게 획득하기 어려운 정보만을 다루고자 한다.

수험생‘자신’에게 달려있는 요소

영역별로 획득한 점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이때 유의해야 할 점은 백분위점수를 반영하는 경우 전 과목의 점수가 고른 경우가 유리하다는 점이다. 또 과목 간 점수 편차가 큰 경우 표준점수를 반영하는 곳에 지원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는 백분위점수와 표준점수의 특성 때문이다.

한편 점수반영방식 중 표준점수를 활용할 때, 획득한 표준점수에 과목별 반영비율을 곱해서 그대로 더하는 경우(표1)와, 획득한 표준점수를 해당 과목의 만점 표준점수로 나누어서 활용하는 경우(표1)는 실질적인 반영비율에서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후자는 실질적으로‘원점수를 반영하는 방식’이지만 일선 현장의 교사들과 사교육의 입시컨설턴트들 거의 전부가 이를 표준점수를 반영하는 경우로 동일하게 취급하며, 이로부터 야기되는 현격한 차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경쟁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요소

정시모집의 상황은 경제시간에 배운‘수요-공급의 원리’를 바탕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이때, 수험생 본인은 합리적인 소비자로서 합리적인 선택을 취했다하더라도, 다른 수험생들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취하게 될 경우, 자칫 비정상적인 합격선의 발생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다른 수험생들의 비합리적 선택이 발생할 것을 제대로 예측해낼 수 있다면, 이로 인한 수혜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가 이른바‘문 닫고 합격한 사례들’이다.

‘공유지의 비극’,‘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입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사례를 통해 실제 입시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살펴보자.

공유지의 비극
2014학년도 고연서성한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그럼 내게 유리한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게 유리한 것은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유리한 곳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 반영비율, 반영방식을 채택하는 대학은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인지 살펴봐야 한다. 나에게 유리한 곳은‘나에게만 유리한 곳’이어야 한다.

지난해 상위권 대학의 정시모집에서는 이 ‘공유지의 비극’이 펼쳐졌다. 오른쪽 표를 보면 다른 대학에 비해 한양대의 외국어영역 반영비율이 유난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문계열 학생들 중에는 수학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어과목에서 특별히 높은 성적을 거뒀다면 한양대를 지원하라. 자신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해 고려대는 원서접수 마감일자를 이틀 앞당겨 조기마감 하는 등 초유의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극심한 하향지원이 우려될 정도로 최상위권의 불안감이 상당했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과 상황이 정시모집에 지원하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최종합격자 커트라인을 기준으로 한양대의 모집단위 대부분은 고려대나 연세대보다 높은 합격점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례는 본인에게 반영비율이 유리하다고 생각되거나,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모집단위는‘본인’뿐 아니라 경쟁자들에게도 동일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내가 지원하고 싶지 않은 곳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다. 바로 201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는 기존의 정원이 5명이었지만, 수시에서 이례적으로 동점자 4명을 전부 합격처리했다. 이런 탓에 정시모집에서 모집단위의 정원이 단 1명에 불과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2013학년도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전통적으로 인문계열 최상위권 입시에서는 모집단위와 학과에 따라 지원을 선택하기보다는 이른바‘간판’을 보고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수험생들은 문화인류학과 지원을 기피했다. 수험생들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차라리 신학과를 지원하면 했지, 불안해서 도저히 지원하지 못하겠다는 말도 나돌았다.

이 학과에는 누가 지원했을까. 추정컨대 고려대나 연세대에 합격이 어려운 학생들이 이곳에 대거 지원했을 것이다. 특히 정시모집에서는 군별로 복수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군에서 안정지원을 하는 대신 이곳에 소신지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반부터 경쟁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10대 1을 훌쩍 넘겼고 마감기준 최종 16 대 1을 기록했다. 연세대 평균 경쟁률인 4.97 대 1을 크게 넘어서는 수치다.

중요한 대목은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높았던 경쟁률이 지원을 원하는 다른 수험생들의 지원을 가로막는 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합격선은 처참(!)했다. 원서접수기간에 공지되는 실시간 경쟁률은 양적 수치만 나타낼 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올해는 비정상적인 합격선을 야기할만한 어떠한 변수들이 존재하는가.

첫째 서울대로부터 촉발된‘연쇄적 모집군 변동’이다. 이 과정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기존과는 달리 급격히 변화한 지점들이 여러 군데 존재한다. 해당 점수대와 대학들에서 극단적으로 높거나 낮은 합격선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의과대학의 대거 복귀’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운영되던 상당수 의대들이 이번 2015학년도를 기점으로 의과대학으로 모집한다.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자연계열 상위권 학생들의 대학진학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개인적으론 회의적이다. 이를 감안해서 재수, 삼수를 택했던 수험생들의 수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비해 상위권 대학입시가 쉽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반면 전체적으로는 그대로지만 입시환경의 변화가 큰만큼, 의대별 합격선에는 극과극의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셋째‘교차지원 금지’를 염두해둬야 한다. ‘숭실대 644사태’가 그랬다. 644사태의 시발점은 인문계열 학생들의 교차지원을 금지하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지원자들의 수요와 공급 원리가 무너지면서 급격한 합격선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서울 중위권 아래 대학은 자연계열 모집단위에 인문계열 학생들의 교차지원을 허용했는데 올해 정시모집에서는 지원자격을 자연계열로 한정한 경우가 많다.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양현일 고려대 교육학과 4학년

입시전문가 그룹‘Athena’등 입시웹사이트에서 대입정시모집 입시분석, 논술강의 등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입시와논술고사관련 다수의책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