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동아리 발표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지라 진로진학부는 자료를 제출하러 오는 학생, 질문하러오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2학년 전체의 진로동아리를 조직하면서 학생들에게“진로동아리를 자체적으로 운영할 자신이 없는 학생들은 독서와 영화도 의미 있는 활동이니 독서반이나 영화반 들어”, “선생님들은 몇 개의 동아리를 동시에 맡기 때문에 도와주시는 데 한계가 있고, 강사 배정도 학교 예산 때문에 몇 개 예능 동아리만 가능해”라고 말하면서 내심 자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동아리가 있긴 하겠지만 개인별 부담이 없는 독서반이나 영화반에 많은 인원이 신청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2학년 510명 가운데 영화반 신청자 37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신의 진로와 관련되는 동아리를 조직해 총 32개의 동아리가 조직됐다. 조금은 놀라고 조금은 걱정됐지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독서반이나 영화반이 있음에도 자신들이 고민해 동아리를 만들었으니 나름 책임감을 갖고 꾸려나가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운영을 해보기로 했다.

학교 전체적으로 운영되는 학생동아리는 동아리별로 지도교사가 배정돼 있고, 선배들도 있고, 그동안 꾸준히 운영돼 오던 것이라 안정적인 데 반해 진로동아리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들을 수도 없고, 지도교사도 한 동아리를 맡는 것이 아니어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연간 계획을 세우고, 진로체험을 하고, 진로특강 강사를 선정하고, 진로를 탐색하고, 발표대회까지 준비해야 하는 어려운 활동이다(그렇다고 모든 동아리가 의무로 모든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님). 그럼에도 이제 갓 1학년을 벗어난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하는 것이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게만 여겨졌다.

결국은 몇 달을 끌고 나가지 못하고 없어져 버린 항공정비동아리(이미 개설된 동아리에 재편성), 동아리 활동에 적응을 못해 탈퇴한 11명을 위해 새로 만들어낸 독서동아리 등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따라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해 패션쇼도 보고(모델동아리),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서 방과 후 수의사 특강도 듣고(동물동아리), 서울지방경찰청도 방문하고(경찰동아리), 아이들 덕분에 즐거운 경험들을 했다. 담당 선생님이 몇 개의 동아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이 체험을 따라갈 때는 남는 동아리를 맡아주고, 담당 선생님이 가지 못하는 경우에 대신 학생을 인솔했다. 그 외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인터뷰도 하고(초등교사동아리), 복지관에 가서 사회복지사 직업체험도 하고(사회복지동아리), 보건소에 가서 심폐소생술도 배우고(간호동아리), 전공 대학생을 불러 조언도 듣고(기계공학동아리), 의사, 약사, 간호사, 군인, 영어교육과 교수, 중등교사 특강 등도 개설해 들었다.

음악반을 운영하는 보컬강사 선생님은 발표대회를 위해 학생들에게 1년 동안 어떤 면이 성장했는지 기록하게 했는데, 개인별 기록을 받아보고 학생들이 느낀 성장모습에 눈시울을 붉혔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모두 나열할 수 없어 아쉽지만 동아리별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 1년의 시간을 거쳐 진로동아리 발표대회가 다가왔다. 동아리 발표대회는 희망하는 동아리만 신청하는 것인데도 31팀이 신청을 해(인원이 많은 동아리는 팀을 구성해 팀별 발표도 허용함) 생각지도 않았던 예선을 거치게 됐다. 활동 내용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한주 한주 보낸 내용들을 보며‘아이들이 해낼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진로를 탐색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요즈음 일반고의 위기라고 한다. 위기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유로 위기의 일반고에 왔을 우리 아이들에게 믿음을 갖고 이러한 장을 마련해 준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현명함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그 잠재된 힘을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