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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로 비상하는 기린, 조선시대 도자기의 미스테리를 풀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백자청화기린무늬향로(白磁靑畵麒麟文香爐)
2016년 08월 04일 (목) 16:13:58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Editor@daenamu.kr
   
  ▲ 사진① 백자청화기린무늬향로  
 

백자청화기린향로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다. 향로의 높이는 25cm이고 입지름은 16cm로 몸통에는 상서로운 동물인 기린을 구름위에서 비상하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 넣었다.

 

경기도 광주 분원리는 19세기 조선 왕실에서 필요한 도자기를 생산하던 도자기 공방인 分院이 설치된 지역으로 지명도 分院里이며, 다양한 종류의 왕실용 器物을 생산한 조선후기 최대의 官窯였다. 풍부한 물과 목재, 수로를 통한 도성인 한양으로의 편리한 운송수단 등의 이유에서 조선왕실의 도자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데 최적의 장소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사진①)의 白磁靑畵麒麟文香爐는 왕실 관요인 司饔院의 분원에서 제작된 왕실용 향로로 바로 이곳에서 제작된 최상품의 御器이다.

도자기향로를 본격적으로 제작한 시기는 고려시대로 형태와 문양이 매우 다양하며 현존하는 유물도 여러 종류가 남아있다. 기린, 사자, 오리, 용, 어룡, 투각칠보문, 연꽃봉오리 등의 像形香爐를 비롯해 方形이나 원통형의 물가풍경 무늬나 한나라 청동기를 인용한 도철무늬향로, 향완형 향로 등으로 대부분 실내에서 사용하는 크기로 높이 20cm내외다. 당시 융성했던 불교와 茶文化의 유행과 더불어 의식용구나 茶道具로 주로 상류사회에서 애용됐다(사진②).

유교문화로 변화된 조선시대도 祭禮用 도구로 도자기향로는 꾸준히 제작됐으나 고려시대에 비해 획일화되고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조선 초기에 제작된 분청사기 향로의 경우에는 한나라 청동기의 香爐를 인용한 복고적인 모습도 보인다(사진③).

조선시대 백자향로는 대부분이 純白磁, 透刻白磁, 陰陽刻白磁로 표면에 靑畵顔料로 문양을 넣지 않는다. 간혹 草花文을 시문하는 경우도 있으나 드문 사례다(사진④). 유교의 제례에 사용되기 때문에 현란한 청화안료의 문양을 자제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사진①)의 백자청화기린향로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다. 향로의 높이는 25cm이고 입지름은 16cm로 몸통에는 상서로운 동물인 기린을 구름위에서 비상하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 넣었는데, 물론 왕실의 畵院畵家 솜씨이며 세 다리와 목 부분까지 如意頭文을 촘촘히 시문했다. 그리고 곧게 선 구연부는 雷文을 둘렀으며 형식화시킨 작은 손잡이를 달았다. 향로의 다리부터 입구까지 온 몸에 청화안료로 치장했다.

胎土는 정성껏 수비한 양질의 白土를 사용해 성형했고 맑고 투명한 淡靑의 유약을 골고루 입혔으며 세 다리 바닥에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받침으로 燔造했다(사진⑤).

   
  ▲ 사진⑤ 향로의 바닥  
 

세련되게 균형이 잘 잡힌 이 향로의 基形은 조선의 法宮인 경복궁 근정전 앞에 놓여 있는 청동향로의 모습과 비슷하다. 金屬製香爐를 생각하며 도자기로 빚은 특별한 사례로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몸통에 그려진 ‘麒麟文樣’이다.

麒麟은 龍의 머리로 한 개의 뿔이 달렸으며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를 달고 몸통은 五色의 털과 龍의 비늘이 덮여있는 상상의 동물이다. 자애심과 덕망이 높은 생물이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1천을 살고 ‘仁獸’라고도 불리며 모든 동물 중에 으뜸으로 聖人이 태어날 때 나타난다고 전한다. 고구려의 벽화무덤에 최초로 등장하는 ‘기린’은 신라시대 막새기와의 문양으로도 사용됐 고려시대에는 王의 호위군을 ‘麒麟軍’이라 했다.

   
  ▲ 사진⑤ 향로의 입구  
 

조선시대는 民畵의 주제로도 자주 활용됐 특히, 大君이상의 왕족만이 麒麟文樣의 胸背를 착용할 수 있었으며 머리에 한 쌍의 뿔이 달린 흥선대원군의 ‘麒麟胸背’가 전해지고 있다(사진⑥).

조선시대 생산된 白磁 중에서 기린문양의 도자기가 몇 점이 전해지고 있을까. 아마도 이 ‘백자청화기린문향로’가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중국 명청대의 도자기에는 자주 등장하는 ‘麒麟文樣’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청화백자에는 왜 사용되지 않았는지…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점이 이 유물의 등장과 함께 한순간에 해결됐다. 문화재 연구자는 발품을 파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先學들의 충고가 진리임을 또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 사진⑥ 기린흉배(문화재청사진)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 문화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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