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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토크라시적 모욕 사회가 청년 성장 가로막고 있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의 '헬조선 담론' '흙수저담론' 깊이 읽기
2016년 08월 04일 (목) 16:38:39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지난 11일(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제15강은 장은주 영산대 교수(철학)의 ‘정치적 인간, 인정의 정치’였다.
장은주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요한 볼프강 괴테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민과 세계>(참여사회연구소) 편집주간을 역임하고 현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공저),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생존에서 존엄으로』,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등이 있고, 『정의의 타자』, 『서구의 분열』 등을 번역했다. 그 외 「민주적 애국주의와 민주적 공화주의」(2010) 등의 논문이 있다.

이날 강연에서 장 교수는 ‘메리토크라시’ 개념을 빌려 논의를 전개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에서 정치적 무관심, 심지어 정치 혐오는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헬조선’ 담론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 담론의 본질은 전근대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 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흙수저-금수저, ‘노오력’과 같은 말에 반영된 청년 세대의 시민적 무기력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의 어떤 핵심적인 단면을 보여준다”고 읽어낸 장 교수는 “한국의 앙상한 ‘결손 민주주의’는 이런 시민성의 허약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싶다”면서 “헬조선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적 역량의 결집이 절대적으로 필요” 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청년 세대가 지배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고 자존감을 지닌 당당한 시민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일정한 물질적 기반을 갖게 하려는 다차원적인 사회정치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주요 강연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유교적 근대성과 그 도덕적 지평
내가 볼 때, 헬조선이라는 풍자어는 한국 근대성의 어떤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나름의 예리한 포착을 담고 있다. 무슨 ‘헬코리아’나 ‘헬한국’이 아니고 다름 아닌 헬‘조선’인 것은, 이 지옥처럼 살기 힘든 우리 사회 현실의 이면엔 조선시대에서나 있었음직한 사고방식이나 관행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리라. 특히 유사 신분 사회를 낳은 세습과 연고주의의 일반화, 여전히 청년세대를 짓누르고 있는 가부장주의나 권위주의 같은 것이 주요 과녁인 듯하다. 내가 볼 때 이는 고도의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이룩했으면서도 강한 유교적 문화 문법과 습속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우리 근대성의 ‘혼종 근대성(hybrid modernity)’으로서의 면모에 대한 단선적이고 속화된 인식의 표현이다. 내가 말하는 유교적 근대성은 바로 이런 혼종 근대성의 한국적 양태에 대한 이름이다. 철저하게 사회적 관계 속에 통합된 개인을 전제하는 ‘가족-신분사회-왕조국가’라는 전통적 ‘예치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대체한 ‘가족-기업-개발독재 국가’의 ‘포스트-예치시스템’ 위에서 발전한 우리의 근대성은 기본적으로 ‘개인 없는 근대성’이다. 다음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문화의 문제도 여기서 확인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교적 메리토크라시 이념이다.

헬조선 또는 메리토크라시의 배반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능력자지배체제)는 부와 권력과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재화를 어떤 사람의 타고난 혈통이나 신분이나 계급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능력에 따라 사람들에게 할당하자는 이념으로,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 일반을 ‘사실적이면서도 규범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분배 정의의 한 이상이다. 문제는 이 메리토크라시가,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 광풍 같은 심각한 교육 병리를 낳았다는 사실 같은 것은 무시하더라도, 노력이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능력에 따라 생겨나는 아주 심각한 수준의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조차 정의롭다고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면서 우리 사회를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심각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고착화시켰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메리토크라시의 이런 배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대중들은 이런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오히려 바로 그 메리토크라시 이념을 내면화해서 그 체제에 정당한 명분을 갖고 반기를 들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이 체제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것뿐이라고 여긴다. 이런 메리토크라시는 우리 사회를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모욕사회로 만든다. 광범위한 대중들의 자존감 상실은 메리토크라시의 필연적 함축이고, 우리가 헬조선을 한탄하는 청년 세대에게서 확인하는 사회정치적 무기력은 그 당연한 귀결이다. 그것은 결국 헬조선 현상의 본질적이고 구성적인 일부인 것이다. 어떤 탈출구가 있을 수 있을까.

존엄의 정치로서의 인정의 정치
내 생각에 그러한 탈출구를 찾는 일의 출발점은 우리 사회의 메리토크라시적 질서에 대한 모종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감행하는 것이다. 메리토크라시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정도에 대한 차등적인 가치평가에 바탕하고 있는 특별한 종류의 ‘인정의 질서’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헤겔에 뿌리를 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인정이론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호네트의 비판이론적 인정이론의 출발점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제도를 사람들 사이의 상호주관적인 인정 관계와 연결 지어 이해하자는 데 있다. 호네트의 인정이론이 우리의 논의 맥락에 기여할 수 있는 바의 핵심은 사회의 여러 제도들(또는 구조)의 도덕적 질이 기본적으로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사회 집단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갈등과 길항의 정도에 따라 규정되고 또 진보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인 데 있다. 메리토크라시적 인정 질서와 관련된 호네트의 인정 형식은 사람은 누구든 단지 자신이 다른 모든 사람과 똑 같이 권리를 누림으로써 존중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회 속에서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가치를 지닌 한 개인으로서도 인정받는 것이 사회적 정의의 원칙이어야 한다는 요청을 담고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한국사회에서 오늘날 메리토크라시적 인정의 질서가 구성원들에게 가하는 부정적인 존재규정적 힘은 너무도 압도적이고 전면적이다. 그것은 많은 구성원들에게 경쟁 등에서 탈락하면 ‘사회적 죽음’에 이를 것임을 위협하면서, ‘불안’을 어떤 근본적인 사회존재론적 정조로서 안착시킨다. 이는 말하자면 많은 구성원들의 실존 전체를 휘어잡는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그것은 인간적 존엄성의 기초 전체를 흔드는 것으로 경험된다. 이 불의의 질서에 맞서 모든 성원의 평등한 존엄성을 지키고 보장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인정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인정의 정치, 곧 ‘존엄의 정치’가 절실하다.

그런데 정의를 추구하는 존엄의 정치는 누가 이끌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다시 우리 문제의 출발점으로 되돌아 왔다. 만약 구성원들, 특히 우리 청년 세대를 지독한 정치적 무기력 상태에 묶어두는 것이 헬조선의 본질적인 구성 원리라면, 어떻게 그들이 깊은 사회적-정치적 무기력에서 빠져 나와 자신들의 문제를 존엄의 정치라는 길을 통해 해결할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인가. 다른 문제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능력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의 메리토크라시적 모욕 사회가 우리 청년들이 시민적 주체로서 형성되는 것을 체계적으로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정치란 궁극적으로 사회의 성원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일정한 방식의 집합적인 의견 및 의지의 형성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제도들을 제어하고 통제하며 필요한 경우 그것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내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의 양식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청년들이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이라고 불리는 이런 정치의 주체로서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헬조선 현상은 영원히 극복되지 못할 것이다.

인정의 정치와 청년의 미래
나는 그 형성적 기획이 기본적으로 교육과 문화 그리고 일상적인 인간적 삶의 양식 전체에 걸친, 말하자면 하나의 ‘인륜적 기획’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메리토크라시적 서열화나 지배의 관계로 전이되지 않을 민주적 상호인정의 관계가 시민들의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사회적 삶의 경험이 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場들과 구조적-제도적 틀을 만들기 위한 전방위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시민적-정치적 참여의 계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형성적 기획으로서의 인정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또한 시민들이 그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경제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사회권을 위한 ‘복지의 정치’이기도 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청년 세대가 지배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고 자존감을 지닌 당당한 시민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일정한 물질적 기반을 갖게 하려는 다차원적인 사회정치적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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