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교양’은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느낌을 준다? ‘예능’이 대세인 시대, 시사다큐 프로그램은 뭔가 고루한 느낌마저 풍긴다. 그래서 이화여대 피디 지망생 3인방이 직접 나섰다. 오수미(언론정보학과·09년 졸), 이유심(정치외교학과·4), 이원경(방송영상학과·3) 학생이 한국방송공사(KBS) 시사·교양국에서 이재오 KBS 피디(사진)를 직접 만났다. ‘KBS 스페셜’을 제작하고 있는 이피디는 기획회의 틈틈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사다큐, 어떻게 만들어질까

수미  이피디님, 안녕하세요. 회의 중에 나오셨다고요?
이피디 앞으로 방송할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회의였어요. 평소에 이슬람권 국가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쪽 국가들의 실상을 알아보자는 기획을 냈습니다.
원경 기획은 어떻게 정하시나요?
이피디 평소에 제작해보고 싶었던 분야나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이 기획거리죠. 제보를 보고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도 많아요. 제보라는 건 일단 그 사건에 대한 관계자가 섭외된 것이잖아요? 직접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제보를 하니까요. 섭외가 용이하고, 또 제보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어떤 자료가 필요하신 지도 알아요. 사실 확인과 자료 조사가 훨씬 수월하죠. 그래서 제보를 많이 참고하는 편입니다.

수미 기획안이 확정되면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이피디 우선은 자료조사를 합니다. 그리고 취재원 섭외와 촬영 장소를 탐방합니다. 이번 기획도 진행된다면 이달부터 이슬람 국가와 주변 국가들, 미국 등지에서 현지 조사를 해야겠죠. 추석 전에 한국에 돌아오려면 꽤 바쁘겠어요.

원경 시사교양국만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이피디 다양한 주제에 깊게 파고 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주제를 다양한 각도로 보고, 이해관계를 조사하면서 사건 너머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죠. 그리고 특정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에는 그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촬영해요. 한 정치인을 새벽에 깨워서 산에 올라간 적이 있어요. 그 분이 출출할 때 먹으라고 제게 삶은 고구마를 주신 적이 있거든요. 이 사람은 참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면은 일상적으로 보기는 힘들겠지만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보면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보다 자세히 접근할 수 있어요.  

1995년 KBS에 입사한 이재오 피디는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했다. 이 피디는 인간의 삶에 무한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다. 주요작품도 사람과 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피플 세상 속으로(2002), 환경스페셜(2004), KBS스페셜(2006), 추적60분(2008), KBS스페셜(2009~현재) 등 16년째 사람과 환경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사진= 최성욱 기자

원경 번거로운 주제도 있나요?
이피디 다양한 종류의 번거로움(?)이 있어요. 자연 다큐멘터리는 연출이 불가능해요. 동물이나 자연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자연 다큐멘터리는 기다림과의 싸움이죠. 그리고 휴먼 다큐멘터리는 일반인들을 프로그램에 끌어들이는 일, 그들 본연의 모습을 끌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워요.
뭐니뭐니해도 가장 번거로운 일은 시사 다큐멘터리죠. 방송 직전까지 소송이 진행 중일 때도 있죠.  방송 몇시간 전에 판결이 나기도 해요. 요즘은 가처분 소송을 거는 경우도 많아서 방송이 된 후에도 처리할 일이 많아요. 이런 점이 가장 번거롭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원경 요즘은 다큐멘터리도 많이 변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누들 로드’(KBS), ‘공룡’(EBS)처럼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요.
이피디 앞으로도 많이 보일 거에요. 예전에는 직접 촬영할 수 없는 역사물 같은 장면들은 문헌을 찍는다거나 그림, 표로 보여줬어요. 그런데 이제는 기술이 바탕이 되니까 과거 사람들의 모습이나 공룡도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됐어요.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비용이 많이 들긴 해도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많이 쓰일 겁니다. 

유심 피디가 된 계기가 뭔가요?
이피디 사실 저는 대학원 진학 후에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건상 취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원한 두 회사 중에 KBS, 즉 PD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역시 ‘자유로움’이 큰 비중을 차지했어요. 피디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어요. 늦게 오면 늦게 가고, 일찍 나와도 일이 끝나지 않으면 야근을 하죠. 의무는 아니에요. 프로그램은 자신의 이름을 거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일합니다.

훌륭한 피디가 되고 싶다면

수미 피디가 지녀야 하는 자질이나 능력에는 무엇이 있나요?
이피디 예능이든 다큐멘터리든 피디는 그 분야를 좋아해야 합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라면 더 잘 알 것이고 그러면 일하기가 수월하죠. 그리고 스텝 장악력이 있어야 해요. 이건 꼭 무서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은 스텝만 1백 명이 넘어요. 그런데 피디가 지시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어요. 정말 많은 스텝들인데, 어떤 카메라를 선택하고 출연자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피디가 선택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서 모든 것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겠죠.

수미 요즘 신입 피디들을 볼 때에 이런 건 조금 더 공부해왔으면 좋겠다 싶은 것, 아쉬운 점이 있나요?
이피디 사실 신입 피디가 어땠으면 좋겠다는 바람 보다는 ‘내가 들어와 보니까 이런 점이 필요하더라’ 하는 부분인데요.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지 정말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공부라는 건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부분뿐 아니라, 알아야 되기 때문에 하는 공부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역사나 정치, 경제 분야의 지식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 전체적인 흐름을 숙지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유심 시사·교양 피디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피디 다큐멘터리 피디는 사람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직업이에요. 단순히 어떠한 사건의 상황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족사, 삶의 모습, 감정들을 전부 다루는 작업을 하죠.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고 함께하는 작업을 많이 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학문적 공부뿐 아니라 경험으로 쌓을 수 있는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길 바랍니다.
   요즘 중요시하는 창의성은 많은 공부를 하고 경험을 해야 발현되는 것이에요. 독창적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거든요. 경험과 지식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죠. 많이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 의사소통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길 바랍니다.

정리 : 이원경 이화여대(방송영상학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