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 서울회의(G20)가 열렸던 지난달, 공식 상징물 청사초롱(작품명: 서울의 등불)은 단연 화제였다. ‘서울의 등불’은 세계 정상들에게 한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의 앞날이 암울하지 않다는 희망의 숨을 불어넣었다.

2천300대 1의 경쟁에서 선택받은 1인은 전문대학생 장대영 씨(24세, 부산경상대·광고디자인과 2, 사진)다. ‘서울의 등불’에 찬사를 보냈던 세계 정상들은 장 씨가 ‘지방’과 ‘전문대학’이라는 큰 산 두 개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알까.

“손으로 그리는 것 진짜 못해요. 아이디어 스케치도 저만 알아보죠. 남들이 보면 낙서했냐고 해요.” 인문계 고교를 졸업한 장 씨는 스스로 디자인에 특출난 재능은 없다고 말한다. 일러스트나 포토샵처럼 광고디자이너의 손발이 돼야 할 기본도구들도 대학에 진학해서야 배웠다. 전문대학 교육과정 3학기, 전국대회 공모전 응시 2회 만에 ‘대박’을 친 셈. 어떻게 가능했을까.

“5월쯤이었나? 교수님께서 G20 공모전 포스터를 들고 오셨어요. 남대문, 남산타워 등 서울의 상징적인 건물들로 디자인한 견본을 보여주셨죠.” 참고용으로 보여준 작품인데 학생들은 하나같이 남대문이냐 남산타워냐 두 소재 안에 갇혀버렸다. “사실 저도 처음 낸 시안이 남대문이었죠. 하하. 다들 비슷한 걸 내니까, 서울의 상징물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았어요. 웬지 남들 따라하는 것 같고, 이리저리 돌려봐도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견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요. 제가 그렇게 전문성 있게 잘 만드는 기술도 없다보니, 아무래도 완성도나 작품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남들과 다르게 해보자’는 마음을 갖게 됐죠.”

장 씨는 G20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점과 지구촌 미래를 회의하는 자리이니 만큼 밝았으면 했단다. 한국적 느낌에 밝은 이미지… 순간 청사초롱이 스쳤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고교시절, 장 씨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주말이면 학업으로 녹초가 된 몸을 뉘여 티브이 채널을 돌려대곤 했다. 그러던 그가 스스로 특별한 재능을 발견했다니 궁금해졌다. “티브이 중간중간에 나오는 광고있죠? 전 그게 본방송보다 더 눈길이 갔어요. 그땐 막연히 ‘나도 저런 광고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영화 포스터나 CF광고 같은 것 말이에요.” 어느 날, 가슴 한켠에 시나브로 자리잡은 광고디자이너의 꿈을 스스로 알아챘을 때, 장 씨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즐거운 것을 통해 즐기면서 돈도 버는 전문가로서의 삶은 바로 거기(광고디자이너) 있다고 느꼈죠.”

전문대학에 진학을 결심했을 때 가족보다 친구들의 만류가 더 컸다. “4년제 대학을 가야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원하는 일을 원 없이 하고 사는 사람, 장 씨가 전문대학을 선택한 이유였다. “전문대학은 한 분야를 콕 집어서 배우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변용할 수 있어요. 결국 학교 간판보다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바로 서면 남들에게도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키운다는 생각으로, 모험하는 셈치고 초보 한번 써 보는 거에요. 장 군, 잘 해봅시다.” 간판회사 사장님은 장 씨의 어깨를 도닥였다. 엄밀히 말해 지금 장 씨는 ‘간판쟁이’다. 지난 8월,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놓고 취업했다. 부산에서 그리 크지 않은 옥외 광고물 제작업체에서 광고물을 만든다. 주로 금융기관, 공공기관, 병원 등에서 의뢰하는 간판을 제작한다. 간판은 제작규정이 엄격하고 회사마다 고유한 마크 디자인이 있어서 창조하는 작업은 드물다. “약간의 길이나 치수를 변형해서 디자인해요. 전 틀만 잡아주죠. 그래도 사회경험, 경력으로 따지면 제 앞길에 아주 소중한 직업이에요.”

하루에도 수십 번 변덕을 부리는 자신을 아는 것도 어려운데, 이런 성격을 직업에 견줘 보는 일은 어떤가. 일단 대학에 들어가서 생각해보자며 내팽개치기엔 어쩐지 개운치도 않다. 광고디자인에 전무했기에 오히려 자기 적성으로 확신할 수 있었던 과정은 장 씨의 꿈을 지탱해 주는 가장 강한 힘이다. “뭔가 ‘재밌다’ ‘나랑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진짜 맞는 겁니다. 재지 말고 자신을 믿으세요. 너무 막연하다고 생각되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그때부터 노력해서 그걸 적성으로 만들면 되요. 하하하.”

장 씨의 목표는 자신의 이름으로 광고회사를 내는 것이다. 옥외광고를 제작하는 일은 꿈을 향한 토대다지기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그랬던 것처럼 장 씨는 서두르지 않는다. 누가 뭐라든 자기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린 장인의 모습이 배어있다. “제가 만든 디자인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 남들은 스쳐보지만 그 찰나에 이목을 끌 수 있는 청사초롱처럼 ‘재밌고 밝은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