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때부터 돈을 다루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죠. 부모님은 제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지만, 저는 펀드매니저나 재무위험관리사가 되고 싶었어요. 고3이 되면서 통계학과로 진학을 굳혔죠.”

   고3 수험생인 오지예(여·창현고·이과)양은 ‘가치투자의 귀재’로 손꼽히는 워렌 버핏이 자신의 역할모델이라고 말했다. 통계학과로 방향을 잡은 뒤로 수학과 과학 공부에 ‘올인’하고 있다. 수학·과학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의대 진학을 고집하던 부모님도 이제는 지예양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고 있다.

사진제공 = 한성대

   2010학년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3 수험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꿈’이다. <교수신문>이 고3 수험생 남녀 1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8%가 이미 지원 학과를 결정했다고 답했다. 전공 결정의 최우선 조건은 ‘적성’이었다. 지예양은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고 싶은 학과를 미리 정한 상태”라며 “내신이나 수능 점수에 따라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를 결정하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성규진(남·중앙고·문과)군도 언어를 좋아해서 일찌감치 불어불문학과로 전공을 정했다. 대학은 수능 점수에 따라 결정할 계획이다. 내신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수시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기회라는 생각에 내신 비중이 적은 논술 전형에 지원할까 고민 중이다. 규진군은  “대학을 졸업하면 외국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외교관이나 통역관으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3 수험생들의 공통된 고민은 성적이다. 수능일(11월 12일)이 다가올수록 압박감은 더욱 커진다. 전현욱(남·창연고·문과)군도 요즘 도통 오르지 않는 모의고사 점수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원래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무시하려고 했는데,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제는 무시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진 않은데 점수가 제자리걸음이니까 매번 죄송해요. 그게 가장 스트레스죠.”

    그런 면에서 주성욱(남·중앙고·이과)군은 ‘행운아’다. 지난 8월 7일 입학사정관제의 하나인 ‘학교장 추천 전형’으로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에 선발됐기 때문이다. 빠른 정보 입수가 비결이다. “저도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생명공학과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입시가 점차 현실로 다가올수록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디자이너에 대한 꿈을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운 좋게도 지금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는 형 덕분에 미술 실기시험 없이도 디자인학과에 입학할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세계에서 인정받는 제품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올해 고3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이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느 수험생과 다르지 않았다. 한 학생은 “전공과 미래 직업을 오직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정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확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학생도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면 내가 꿈꿔온 대로의 삶을 살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여행’을 가거나 그동안 못 했던 ‘운동’을 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일부 학생들이 ‘유학’이나 ‘자격증 따기’, ‘영어·일본어 등 어학공부’, ‘고시 준비’ 등을 꼽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고3 수험생들이 꼽은 자신의 역할모델도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쥔 리더들이 상당수 포진됐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다. 반기문 총장은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오르며 ‘글로벌 리더’로 역량을 펼치고 있고, 안철수 교수는 의사 출신의 벤처사업가로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백신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백신 전문가로 전 세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예양이 꼽은 워렌 버핏도 좋은 기업에 대한 투자로 세계적 갑부가 된 인물이다.

    수험생들이 되고 싶은 역할모델은 ‘자신의 직업에서 꿈을 실현한 사람’,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대학이나 학과를 자기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장래희망도 전문직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고3 수험생들이 갖고 있는 ‘성공’에 대한 인식과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쩌면 ‘성공을 위한 채찍질’일지도 모른다.

권지희 기자 Editor@daenam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