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전남대 총장

우리나라 국민의 95%가 중·고교에 진학하고 고교 졸업생 84%가 대학에 진학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최고의 고등교육을 수학하는 학력과잉 사회에 진입했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시대에서 학생이 대학을 선별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한때 학력과잉 현상이 무한경쟁을 유도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학력과잉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과 같은 냉소적 표현을 유행시킨 청년실업의 주범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 진학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시대가 끝난 것이다. 그럼에도 왜 대학에 가느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좋은 직장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대학 교육이 아직도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로 의식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화려한 학벌로 치장할 수 있는 보다 유명한 대학, 확실한 직장이 보장될 것 같은 학과로 진학하고자 함은 바로 행복의 사다리를 오르고자 하는 합리적 이기심의 발로이다.

    그런데 대학교육이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지금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특정대학 특수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조차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튼튼한 사다리가 내일도 튼튼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나보다 한발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은 한사코 그 사다리를 없애려고 한다. 대학교육을 통해 명예와 부를 축적해 신분상승을 이룩한 사람들이 다음 세대가 같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막고자 오히려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이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기득권층은 시대의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열정조차 독점하고 있는 듯하다.

초등학교, 심지어는 유치원부터 많은 돈을 들여가며 특별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교육은 더 이상 희망의 상징이 아니다. 공교육만 가지고는 저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는 우려가 현실적인 문법으로 다가서고 있다.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라는 기득권층의 자신감은 청년들의 허무주의를 변호하는 명제로 둔갑하고 있다.

    그러나 신분 상승을 이룩했던 사람들이 공부했던 분야가 예전부터 확실한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인기 있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학문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0여년 전 전자공학은 미래가 보장되는 학문은 아니었다. 과거에 선망하던 직업들이 어느덧 사라지거나 더 이상 젊은이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세상은 변한다. 한번만 변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가장 정확하고, 가장 확실한 진리를 제시할 것 같았던 자연과학마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과 공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확실한 것은 없어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뉴턴의 우주는 바뀌었다. 지식의 생태계는 항시 변하는 법이다.

    역설적이게도 기득권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래서 교육이다. 교육은 인간을 변화시키기 때문이고, 변화의 원동력이 교육이기 때문이며, 창조적 반발이 교육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리가 대학 교육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남이 하는 길을 따라 나서는 것은 결코 교육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짝퉁’이 결코 명품이 될 수 없는 것처럼 1등은 결코 모방해서 얻을 수 있는 훈장이 아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던 밤, 동방박사 세 사람은 별의 안내를 받아 아기 예수를 찾아 나선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마친 이들은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갔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나서야 하는 것이 진리(=아기 예수)를 만난 사람의 길임을 상징으로 말한다.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앞으로 견디어야할 현실은 너무 혹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험한 물살을 제치고 강물을 거슬러 오른 연어들만이 산란의 축복을 맞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왜 대학에 가느냐고 묻거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바꾸고자 그리한다고! ‘자기가 자기로 살아가기 위해’ 대학을 가겠노라고. 그런 면에서 나는 우리 학생들이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다.그리고 그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다.

김윤수 전남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