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작업실을 상상한 적이 있다. 거실 한 편에는 만화책이 수북이 쌓여있고, 작업하다만 종이가 여기 저기 널려있는. 책상에는 미술 도구가 가득 놓여있고, 작업용 컴퓨터는 24시간 가동되는 그런 곳을 머릿속에 그렸었다. 허나 상상일 뿐이었다. 잘 정리된 책상에는 작업용 컴퓨터만 놓여 있었고, 널려있는 종이는 한 장도 없었다. 신발장 옆에 놓인 책꽂이에는 만화책뿐만 아니라 소설책, 각종 인문학 서적(심지어 제목이 한자인 학술 도서들도 있다)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마감 전날만 켠다는 작업용 컴퓨터는 인터뷰 날에도 잠이 들어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만화처럼 깔끔한 그의 작업실 겸 집에서 지난달 23일 오후, 웹툰 작가 주호민을 만났다.

스물한살에 찾은 재미있는 일

주호민 작가는 현재 네이버 웹툰에 월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2차례 <신과 함께-이승편>을 연재중이다. <신과 함께> 3부작 가운데 두번째 시즌이다. 우리나라 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신과 함께>에는 온갖 (귀)신들이 등장한다. 저승사자와 염라대왕 같이 저승에 사는 신들과 조왕신(부억을 지키는 신), 측신(화장실신) 등 집을 지키는 가택신 등 그 종류가 엄청나다.
특히 시즌 1에 해당하는 『신과 함께 - 저승편』은 이승에서 49재를 지내는 동안 저승에 올라간 혼백이 7번의 심판을 받는 한국의 전통적인 저승관을 담고 있어 연재 당시 큰 화재를 모았다. 지금은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2013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가 진행 중이고, 서울 동숭동 ‘꼭두박물관’에서는 기획 전시(오는 25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2010년에 독자만화대상 온라인 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잘 나가는’ 웹툰 작가지만, 그의 꿈이 처음부터 만화가였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냥 성적에 맞춰서 원서 쓰는. 만화는 연습장에 그냥 그리는 정도였고요.”만화를 잘 그릴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보통 아이들만큼 만화책을 좋아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딱히 되고 싶은 게 없었죠.” 그의 말은 담담했다. 불연듯 피곤에 찌든 얼굴로 학교 책상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 작가가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건 21살 때였다. 대학 진학에 2년 연거푸 실패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한 항공전문직업학교의 애니메이션학과를 다니던 시기였다. 직업전문학교는 노동부가 주관하는 직업 훈련 기관으로,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이나 전문대학처럼 학점을 인증 받을 수 있다. 졸업 후에는 대학이나 전문대학으로의 편입도 가능하다. “처음 만화를 그리게 된 건 2001년도였어요. 우연히 연습장에 연필로 그린 만화를 스캔해서 올려놓은 만화를 보게 됐어요. 무척 재미있었어요. 출처를 찾다보니 ‘삼류만화패밀리’라는 사이트가 나왔는데, 마침 새롭게 연재할 작가를 뽑고 있더라고요. 응모를 했는데 덜컥 당선이 됐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학교가 주 작가를 만화가로 만들어 준건 아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오니 다니던 애니메이션 학과가 없어지는 비극이 초래됐더라구요(웃음). 그래서 그냥 학교를 그만 뒀어요.”전공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우발적으로 학교를 그만 둔 것은 아니다. “직업전문학교다 보니 기술적인 주로 가르쳤어요. 툴 다루는 것 같은. 하지만 만화가는 기술자가 아니잖아요? 지금은 물론 그때 배운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았어요. 또 학교에는 작가가 되려는 학생들보다 애니메이션 기술자가 되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제가 생각하던 것과는 좀 달랐죠.”
그를 만화가로 데뷔시킨 건 입대 전 만화를 연재했던 ‘삼류만화패밀리’였다. 사이트에 연재했던 그의 작품들을 본 인터넷 포털 측에서 정식 연재를 요청한 것이다.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짬』을 통해 그는 웹툰 만화가로 정식 데뷔했다.
만화가로 데뷔할 기회는 얻었지만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까지 많은 고민과 고생을 겪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도 수차례 했다. 피자집 주방일, 주유소, 마트에서 상품 포장하기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데뷔작인 『짬』을 그릴 때까지는 원고료도 받지 못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가 계속 만화를 그리게 한 원동력이 궁금했다.
“칭찬이었어요, 칭찬. 만화가 재미있다는 칭찬이 계속 듣고 싶었어요. 보여주는 재미를 알게 됐고요. 그러니 더 많이 칭찬해주세요. 악플은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가 누르는 행위니 자제해주시고요(웃음).”

‘꿈’을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하자

주호민 작가의 웹툰에는 특징이 있다. 지금, 여기’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는 점이다. 그의 데뷔작 군대만화인 『짬』, 길 잃고 헤매는 청년들을 그린『무한동력』은 모두 21세기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신과 함께-저승편』 역시 마찬가지다.
“저는 항상 현재를 그리려고 노력해요. 진로 때문에 방황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린『무한동력』은 당시 제 친구들의 모습을 담았어요. 『신과 함께-저승편』도 우리가 살면서 짓게 되는 죄들, 그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렸죠. 그러다보니 현재의 이슈들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깨알같이 담아내는 작가의 관찰력은 ‘대학 진학’과 관련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지금의 대학은 그냥 너무 당연하게 가는 곳이 됐어요. 아이를 위한 저축 상품을 소개하는 어떤 광고를 봤는데 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보내려면 이런 걸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대학을 간다는 걸 전제로 그런 광고가 나오고,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회되는대로 많은 경험해 보세요

80%의 이상의 고등학생이 진학하는 ‘대학’, 혹시 대학 진학의 기회를 놓친 걸 후회하진 않을까. “제가 대학을 갔다면 만화가가 안 됐을 수도 있어요. 남들처럼 취업 준비하고 토익 공부를 했을지도 모르죠. 저 같은 경우는 대학에 안 가서 만화를 그리게 된 거니까요, 대학 진학은 잃고 얻는 부분이 각각 있는 것 같아요.”
20대가 되고 난 뒤에 발견한 만화가로서의 꿈. 그는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학생들에게 자기가 뭘 좋아하는 지 잘 하는 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 우연히 만화를 그리게 됐고, 내가 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잖아요(웃음).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일찍 꿈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꿈이라는 말을 너무 거창하게 해석하거나,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꿈이라고 하면 막연하고 거창한데, 하고 싶은 것 혹은 좋아하는 것이라는 말로 대체를 하면 더 편해질 거예요. 그런데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게 없을 거예요.(웃음) 그건 당연해요. 해 본 게 없으니까. 다양한 경험을 해야 좋아하는 것도 생기고,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겨요. 자는 시간 외에는 학교와 학원에 있지만, 기회가 되는 데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직접 경험이 힘들면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라도 많이 해보길 권해요.”

- 주호민 작가의 추천 도서 -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는 주 작가에게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받았다. 지금도 그는 대중을 위한 인문학 서적과 신문,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본다. 책꽂이에 꽂힌 인문학 및 소설은 그의 책임이 분명해졌다. 인문학 책을 읽는 만화가? 편견이 또한번 무너졌다.
작가가 얘기한 것처럼 간접 경험에 좋은 독서! 아래의 책들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강추’한다.

『청춘의 문장들』(김연수, 마음산책, 2004) : 소설가 김연수가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담고 있다.

『붓다』(데츠카 오사무,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1) :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만화. 종교적 인물의 이야기지만, 선교와는 무관하다. 한 인간의 역정을 그린 드라마틱한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