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동안 3만 명이 넘는 학생들의 진로 지도를 감행한 선생님이 있다. 15년간 꾸준히 청소년의 다양한 자립을 응원해온 서정화 선생님이 그 주인공. 꽃샘추위로 살짝 코가 시린 봄날, 선생님을 만났다.

청소년의 다양한 진로를 응원하는 서정화 진로지도 선생님  사진제공=최성욱 기자

서 선생님이 주로 하는 일은 지역단체나 학교와 연계해 3시간짜리 진로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것이다. 성적ㆍ환경 등에 짓눌린 스스로의 욕구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미래의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진로에 있어 아이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태산이 아니라 돌부리입니다. 산이 아니라 돌에 걸려 넘어지죠. 그걸 넘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선생님은 이렇게 매년 4천2백명 정도의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어느 중학생이 묻더군요. 영어·수학을 못하는 데 꿈을 가져도 되냐고. 진로를 찾는 아이들은 태산이 아니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죠. 그걸 넘을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지금은 진로를 지도하는 입장이지만 서선생님에게도 좌충우돌 진로 탐색 기간이 있었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취직했다. 공부가 하고 싶어 야간대학을 다니며 문예창작을 배웠는데 그것도 모자라 다시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해 지금에 이르게 된 것. “아유, 저도 미국 유학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그래도 내가 그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자신감이 있어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이 스펙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라면 대학 다니는 게 괴롭겠죠. 사실 배움이라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건데, 많은 학생들이 대학 안 가면 피해가 있으리란 두려움으로 진학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두려움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죽이니까요. 이건 비단 청소년들뿐만이 아니에요. 3, 40대도 마찬가지죠.”

서 선생님이 15년 동안 일해온 노원청소년자활지원관은 주로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사회복지단체다. 선생님도 처음에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만 진로 지도를 했다. 그러다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진로에 있어서는 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연구를 보면 고등학생들이 19개 직업만 알고 있다고 나와요. 사실 소수 1%의 직업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99%의 아이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일단 직업에 대한 인식을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서 선생님은 이 같은 생각에서 300개 직업을 망라해 진로 교육 책자를 펴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3일 동안 17명을 대상으로 지역의 일터를 선정해 직접 일해보는 직업체험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은 하나같이“세상이 믿을 만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 학생은“자동차 영업소장이 열정적으로 고객과 직원들을 상대하는 걸 보면서 이 분이 정말 멋지다는 걸 알았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실제로 변호사, 과학자, 화가와 같은‘그럴듯해 보이는’직업보다는 서점 직원, 마을버스 운전사, 동사무소 직원과 마주치며 산다. 서 선생님은“아이들은 지역의 소소한 일들의 가치, 어떻게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지를 마주할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중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라‘진로’그 자체라고, 서 선생님은 누누이 강조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이룩하고, 어떤 장소에서 쓰이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 그 자체다. 그래서 선생님은‘진로 지도’라는 건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지도와 나침반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6학년 된 아들을 두고 있는 엄마로서도, 진로 교사로서도,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답을 찾아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서 선생님은 청소년을 지도하는 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게 끊임없이 물어봐주고, 청소년들 스스로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지지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청소년들에게는“주변에 충분히 도움 줄 어른들이 있으니 믿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진로를 찾은 서 선생님에게도 꿈이 있다. 훗날 그의 아들과 진로 지도를 한 학생들에게‘제가 제 삶을 너무도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9년 동안 3만여 명, 얻은 교훈은 평범한 만큼 깊고, 갖게 된 꿈은 작아 보여도 크다.

7년 진로지도‘비결’7권에 담아

2011년 서정화 선생님을 필두로 한 4명의 진로교사는 7년간 진로 지도를 하며 얻은 노하우를 7권의 책에 담았다. 더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를 바탕으로 진로를 안내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실제 현장에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실용적인 것이 특징이다. 책자에 소개된 프로그램은 노원지역 학교 20여 곳을 포함해 많은 지역에서 실시돼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 책은 한 권의 길라잡이와 6권의 직업정보로 구성돼 있다. 길라잡이에서는 진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비롯해 학급에서 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담았다.

나머지 6권에는 홀랜드 검사 분류(예술형ㆍ관습형ㆍ기업형ㆍ탐구형ㆍ실재형ㆍ사회형)를 바탕으로 300개의 직업을 정리했다. 직업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뿐 아니라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적성과 능력, 필요한 자격증, 관련 학과, 유사 직업도 소개하고 있어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