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 있던 길동이가 운동을 해보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겠다며 24시간 시간표를 만들었다. 장래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하겠다며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길동이의 모습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 이제는 스스로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생각하게 됐어요.”

서울 성수고등학교에서 진로진학상담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종우 선생님이 길동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초였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달라져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의 대안요? 꿈이 있는 학생은 일탈하지 않습니다. 꿈이 없고, 목표가 없으니까 피씨방에서 헤매는 것이지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꿈을 찾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김 선생님은 25년 경력의 베테랑 교사다.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장도 맡고 있다. 지난해에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일본어를 가르쳤다. 한 때는 진학 전문가를 자처했다. 이른바 명문대학에도 제자 여럿을 진학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제자가 찾아왔다.“ 적성에 안 맞아‘반수’를 하겠다고 말하는데,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이들한테는 정말이지 진로를 통한 진학지도가 돼야 합니다.”

이런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한 때는 명예퇴직을 하고 교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보충수업 할 때 좋더라고요. 돈을 받으니까(웃음). 그런데 이것이 정말 아이들한테 가치 있는 교육이냐. 지식을 파는 상인이 돼 가는 것 아니냐. 그런 자괴감이 들었어요. 아이들한테 감동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게 평소 생각이었는데….”마침 진로진학상담교사를 모집한다고 했고, 김 선생님은 주저 없이 지원했다.

지난해에 김 선생님은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학생들을 맡은 적이 있다.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대신 아이들에게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도록 했다.“ 기초가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리 성적을 끌어올리려 한다고 잘 오르겠습니까. 사람 마음이 바뀌어야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되겠다. 발표를 하면서 아이들이 막 울어요. 공부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해 주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달라져요.
꿈이 없고 목표가 없으니 피씨방에서 헤매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꿈을 찾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진로진학상담교사 생활은 아이들만 변화시킨 게 아니다. 김 선생님도 덩달아 변했다.“ 아이들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면서 내가 감동을 받아요. 내가 학생들로부터 배운다니까요. 내가 학생들로부터 감동을 받고, 또 그 애들한테 감동을 주고….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는데, 진로진학상담교사를 하고 나서부터 정년까지 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그 자신도 다시 꿈을 찾은 셈이다.

김 선생님이 이렇게‘꿈’을 강조하는 데에는 자신의 경험도 한 몫 한다. 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무지 속을 끓였다. ‘맹모삼천지교’라고, 시골 땅 팔아 이사까지 했다. 딸은 변하지 않았다. 재수까지 해서 서울의 한 전문대학에 턱걸이로 들어갔다. 변화가 찾아온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장학금을 타 왔다. 방학 때 미국 연수를 다녀오더니 편입을 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서울 유명 사립대학에서 교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중학교 때 우리 딸 꿈이 뭔지 아세요. 네일아트 하는 것이었어요. 새파란 칼라렌즈를 하고 와 기절초풍한 적도 있죠. 그렇게 컸던 애가…. 이젠 김연아 아빠가 부럽지 않다고 해요. 자기가 알아서 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니까. 고3인데도 아직 진로를 결정 못해 헷갈리는 학생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합니다. 더 고민을 하다 보면, 우리 딸처럼 어떤 상황이 되면 자기 마음에 딱 오는 게 있을 거예요.”

꿈을 찾는 과정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1학년 때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야 한다. 2학년 때는 대학을 갈지, 대학을 간다면 어떤 학과를 갈지, 취업을 할지 진로탐색, 학과탐색을 해야 한다. 직업세계도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진로교육의 최대 장벽은 학부모다. 직업의 종류는 1만2천여개나 되지만 학부모에게 자녀의 희망직업을 조사해 보면 전부‘~사’자 돌림이다. 대학 가면 다 취업하고 돈 잘 벌 줄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지만 어려움도 있다.‘ 진로교육이 뭐가 중요해. 좋은 대학 보내면 좋은 거지.’진학만 고집하는 교장선생님이 아직도 많다. 진로진학상담교사의 70%는 독립된 상담실이 없다.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증원도 필요하다. 성수고등학교만 해도 한 학년이 13학급인데 김 선생님 혼자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 맡고 있다.“ 진로를 잘못 선택해서 부담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엄청납니다. 진로 교육을 위한 예산은 국가 장래를 위한 예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