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와 번역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편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많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말'이면 통역사, '글'이면
번역가라고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점 때문에
하는 일과 요구되는 능력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통역 업무는 짧은 시간에 귀로 들은 내용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순발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수업광경.  사진제공=한국외국어대 홍보실

미세한 차이는 알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쉽지 않은 우리말 표현들, 만약 외국인에게 영어로 설명한다면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찌뿌둥한 날씨’, ‘새초롬한 얼굴’,‘ 칼칼한 맛’처럼 우리말로도 쉽게 설명하기 힘든 단어는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문화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의미 전달에 차질이 생기기 쉽다. 때문에 한국어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외국어로 전달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바로 이러한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 통역사와 번역가다.

이 두 직업은 짝꿍처럼 비슷하면서도 깊이 들여다보면 독특한 차이가 있다. 일단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편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많다. 결국은 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말’이면 통역사,‘ 글’이면 번역가라고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점으로부터 두 직업의 실제 하는 일과 요구되는 능력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어떤 일을 하나

통역사는 국제회의, 세미나, 학술대회, 발표회, 오찬 및 만찬 등에서 통역 업무를 담당한다. 가장 유명한 통역사는‘통역사의 꽃’이라 불리는 국제회의 통역사로, 동시통역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통역 업무는 짧은 시간 안에 귀로 들은 내용을 이해하고 분석해 가장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순발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게다가 중요한 회의나 협상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통역하는 분야에 대한 사전지식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통역사들은 국제회의나 컨퍼런스가 있기 최소 3~4일 전에 자료집을 받아 전문용어나 사전지식 등을 미리 공부하게 된다.

통역사의 업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굉장히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통역부스 안에서 통역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무대에서 통역 업무와 함께 제품발표회 같은 행사를 진행하거나 오찬 및 만찬 등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실제로 통역은 크게 동시통역과 순차통역, 위스퍼링 통역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시통역은 통역부스 안에서 발표자가 하는 말을 청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동시에 통역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청중들은 수신기를 통해 통역내용을 듣게 되고, 보통 2명이 한 팀을 이뤄 진행한다. 동시통역사는 양쪽 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전에 주제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순차통역은 발표자가 연설한 내용을 자신이 발표하듯 재빨리 청중에게 통역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통역사는 통역부스가 아닌 공개석상에서 통역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따라서 옷차림과 용모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위스퍼링 통역은 말 그대로 속삭이듯(whispering) 귓속말로 통역하는 형태를 말한다. 주로 듣는 사람이 소수이거나 주요 인사를 수행하며 통역할 때 사용한다

말이 오고가는 현장에서 일하는 통역사와는 달리 번역가는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을 번역하는 일이다보니 번역가는 번역의 정확함과 유려함을 위해 내용을 꼼꼼하게 수정하고 교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번역 역시 알고 보면 다양한 영역으로 전문화 돼 있다. 외국드라마나 외국영화 같은 영상번역만 하는 번역가도 있고, 수출입 제품의 사용설명서만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번역의 영역은 문학번역, 영상번역, 전문서류 번역 등으로 나눈다. 문학번역은 외국어로 된 소설, 시, 희곡, 수필 뿐 아니라 인문사회, 자연과학 분야의 대중적인 작품을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영상번역은 영상물을 자막이나 더빙용 원고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전문서류번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의 논문, 학술서적, 무역서신, 제품설명서, 계약서, 행정서류 등을 번역하는 것으로 대개 해당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요구된다.

어떻게 될 수 있나

그럼 통역사와 번역가가 되는 길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두 직업 모두 입직을 위해 꼭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이나 교육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에 속하기 때문에 전문가로 활동하기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특히 국제회의 통역의 경우는 대개 국내 통·번역 대학원을 수료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고, 입학을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통·번역 대학원 통역학과에 입학하면 영어, 중국어, 불어, 일어 등 1개 이상의 외국어를 선택해 공부하고, 통역 실무와 함께 정치, 경제, 기술 분야 등에 대한 전문지식을 공부하게 된다. 통·번역 대학원에 입학하는 데 전공의 제한은 없지만 무엇보다 입학 경쟁률이 치열하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번역가의 경우는 통역사에 비해 다양한 이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진출하는 편이다. 문학작품 번역의 경우 대학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고, 해당 국가의 다양한 문화를 알아야 하는 번역가의 특성상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번역을 맡기도 한다. 또 정보통신, 경제, 경영 등의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번역할 때는 전문영어의 이해가 필수이므로 관련 학과 전공자들이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번역가 또한 통·번역 전문대학원이나 번역전문 교육기관에서 체계적으로 실무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진출하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통역사와 번역가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능력은 무엇보다 외국어 실력이다. 그리고 외국어 실력 못지 않게 우리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외국어를 유창하게 잘 한다고 해도 이를 문맥에 맞게 우리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의사소통이라는 기본적인 업무수행이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외국어 실력이야 외국인들이 훨씬 좋겠지만 그들이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통·번역을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해외에서 오래 살아서 이중언어 사용을 수월하게 하는 사람(bilinguist)이라 해도 통·번역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려면 별도의 실무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번역사에게 중요한 능력이 정확성이라면, 통역사에게는 순발력이 중요하다. 통역은 실시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통역할 내용을 빠르게 분석해 적확한 단어로 표현하려면 순발력은 기본이다. 반면 번역가는 순발력보다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한 꼼꼼함이 중요하다.

직업 전망은

그렇다면 앞으로 통역사와 번역가의 직업적 전망은 어떨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두 직업의 활동무대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늘어나는 반면, 실력 차에 따른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통역과 번역 업무 모두 철저히 능력 위주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실력을 꾸준히 계발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통역사는 시간대비 소득이 높은 전문직으로 자기 계발을 꾀할 수 있는 등 직업적 장점이 많다. 이로 인해 통역사를 꿈꾸는 지망생도 많은 편이다. 특히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의 특성상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편이고, 현장에서 바로 바로 실력을 평가받게 되므로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나름의 생존전략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 있어 정보기술(IT), 경제, 정치, 의학 등 자신의 전문 통역 분야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외국어 실력이 뒤떨어지지 않게 관련 외국어 방송이나 책자 등을 매일 접하는 등 외국어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고, 국제회의 통역사의 경우는 시대적 흐름과 국제적 이슈에 대해 늘 관심을 갖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번역가 역시 번역실력이 곧 직업의 생명력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대개 번역료가 높은 건들은 이미 실력을 검증받은 번역가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많고, 신인 번역가의 진입장벽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따라서 문학, 영상, 전문서적 등 본인만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고, 해당 영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번역가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갈 수 있다.

이랑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