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이야기,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추구했던 꿈을 향해 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내‘우리시대의 얼굴’이란 기획으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고자 합니다. 내로라하는 대학 졸업장은 갖고 있지 않지만, 누구보다 더 단단한 꿈을 안고 살아온 우리시대 이웃들의 얼굴을 통해 대학 선택을 앞 둔 고교생과 이들을 지켜보는 학부모, 교사들이‘삶과 꿈, 도전’의 아름다운 과정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대한민국 제빵 명장 제8호인 함상훈 명장(54세, 사진)이 운영하는‘함스브로트과자점’(이하 함스브로트)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쌍문역 4번 출구에 자리잡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그의 제과점을 둘러싸고 있다. 함스브로트를 중심으로 위, 아래쪽에만 프랜차이즈 빵집이 세 군데나 들어섰다. ‘윈도베이커리’(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제과점)가 유지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함 명장의 빵에 대한 진심 때문이다.

“올해로 빵을 만든 지 37~38년 됐습니다. 함스브로트는 14년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하루에 최소한 열두 시간씩은 꼬박 일합니다.” 빵에 대한 함 명장의 열정은 그의 말과 행동 뿐만 아니라 가게이름에서도 묻어난다. 함스(Ham’s)는 그의 성과 영어의 소유격이 합쳐진 단어. 브로트는 독일어로‘빵’이라는 뜻이다. 함스브로트를 풀면 곧‘함씨의 빵’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만족하는
제빵왕이지만, 그가 안타까워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기술자'를 제댜로 대우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다.
그는 공부에 소질 있다면 공부를,
기술에 소질 있다면 기술을 배우라고 말한다.

빵밖에 몰라요

빵은 그의 운명이었던 걸까. 지인 중에 제과점을 운영하는 이가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제과점을 운영하는 분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제과점에 관한 관심이 더 많이 생겼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꼭 한 번 빵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제빵사를 꿈꿨던 당시, 빵집은 매우 인기 있는 직종이었다. 경제발전 시기라 모든 곳에 일손이 부족했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제과점은 특히 인기가 좋았다. 숙식까지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과점 일은 고됐다. “1970년대 톱스타였던 영화배우 신영균 씨가 운영하는 명보제과라는 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충무로 명보극장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죠. 1970년대 당시에도 하루 매출이 200만원, 빵을 굽는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만도 25명에 달했습니다. 무척 큰 곳이었죠.”하지만 그렇게 큰 제과점이라고 해도 설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모든 일을 사람이 직접해야 했다. 제빵사들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다음날 판매할 빵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4시면 일어났다. “당시에는 전기 시설이 돼 있지 않아서 빵을 구우려면 연탄보일러 같은 것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조개탄 같은 것을 넣고요. 그 보일러가 잘 가동이 돼야만 스팀이 문제없이 나와 빵을 구울 수 있었습니다. 명보제과는 큰 제과점이었기 때문에 빵 반죽을 발효시키는 발효실도 무척 넓었습니다.”

함 명장은 다른 직원들이 모두 새벽 4시에 일어날 때, 30분 먼저 일어났다. 보일러를 틀고, 반죽이 된 빵이 잘 발효되는지 살폈다.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사람은 없었어요. 스스로 먼저 움직였습니다. 빵 만드는 게 좋았으니까요.”

바쁜 일과 속에서도 빵에 대한 그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제가 제빵을 하던 초기만 해도 외국에 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있는 기술에 우선 관심을 많이 뒀죠.”그 중의 하나가 버터크림 케이크였다. 그때 갈고 닦은 기술로 함 명장의 버터크림 케이크는 지금도 무척 유명하다. 그는 후배들이 기초 위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제과제빵 배합표를 소수점까지 정확하게 체계화하기도 했다.

“서른 두세 살 무렵부터는 일 년에 한 번씩 외국에도 꼭 나갔습니다. 선진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죠. 우리나라에서 무스 케이크를 만들어 잡지에 최초로 소개할 당시에는, 그 재료가 아직 수입되지도 않았을 때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제품도 만들었다. 지금은 흔한, 쌀을 이용한 빵도 함 명장이 최초로 시도한 제품이다. 서울국제빵과자전에서 쌀을 이용한 빵을 처음 만들어 금상을 받았다. 벌써 25년 전 일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2010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제빵왕 김탁구」가 떠올랐다. 혹시 함 명장이 주인공 김탁구의 모델은 아닐까.

함 명장은 자신의 노력과 도전들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라는 듯, 매우 편하게 지낸 것처럼 말했다.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제가 직원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라, 생각을 많이하라, 시작했으니 열심히 하라.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하루라는 시간은, 놀면서 보내는 사람에게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2년 후에 보면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죠.”

그는‘생각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생각하지 않으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어요. 순서를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 해요. 집중력도 중요합니다. 빵 한 가지를 만드는 데 보통 7~8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배합할 때 설탕이나 소금, 이스트 같은 재료를 빠뜨리거나 두 번 넣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99%만큼을 성공한다고 해도, 꼭 실패한 1% 빵이 손님을 만나게 되죠. 도전할 때도 생각은 중요합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이유를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만족하는 함 명장이지만 안타까워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기술자’를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는 한국사회의 인식이다. “연수를 가보면 해외에서는 기술에 대한 애착이 많아요. 일본의 제빵사들은 유럽에 가서 기술을 배울 때 이렇게 말한답니다. 월급은 필요 없으니 기술을 가르쳐 달라. 프랑스에서는 제빵 최고기술자인 MOF(Meilleurs Ouvriers de France)가 제과점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빵을 사기보다 그 장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탁월한 기술을 가진‘명장’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는 최근 겪었던 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명장으로 선정된 게 지난해 9월 5일이에요. 여기저기서 축하 화분을 50여 개 정도 받아서 함스브로트 앞에 놓아뒀습니다. 손님의 90%는 주인이 바뀌었냐고 물어보고, 5%는 꽃집이냐며 화분을 팔라고 하더군요. 명장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한 1~2% 될까요?. 하하”

함 명장의‘식지 않는 오븐’

함 명장은 대중들이 기술직, 명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보니 모든 사람이 대학과 공부 쪽으로 치중한다고 지적했다. 기술을 배워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모두 대학에 갈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공부는 공부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위치한‘김영모 과자점’으로 유명한 김영모 회장은 아들이 2명, 딸이 1명 있습니다. 김 회장의 작은아들은 한국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제빵 기술을 배우러 프랑스로 유학을 갔습니다. 김 회장이 돈이 없어서 공부를 안 시킨 게 아닙니다. 그것처럼 공부만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업장에 들어서면 오로지 빵 생각뿐이라는 함 명장은 지금도 제빵사를 꿈꾼다. 밀가루로 만드는 수많은 음식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서너 시간이 걸리는‘빵’, 그에게 빵은 정성이고 예술이다.

외국처럼 기술을 가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제과점의 오너가 아닌 쉐프로 남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함 명장의 꿈은 자신의 빵만큼이나 담백하고 감칠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