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머니, 특히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는 지금 이 계절이 가장 지나기 어렵다. 체력이 바닥에 떨어진 수험생들 못지않게 엄마들의 체력도 거의 고갈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앞으로 몇 달을 더 버텨야 한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온갖 짜증을 부린다. 이 짜증을 삭여줄 이도 엄마다. '슈퍼우먼' 같은 고3 엄마들, 과연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들은 고3 수험 생활, 대학 선택, 대학 입시제도 등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나라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이들 어머니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읽고나 있는 걸까. <대나무> 14호는 뜨거운 여름, 고3 자녀를 둔 네 명의 어머니를 만나, 그들의 고민과 바람을 들어보았다.  
 
6월 4일 오후 세시. 수원 아주대 앞 한 카페. 근처 창현고등학교 3학년 어머니들이 자리를 잡았다. 고3 수험생을 둔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한 번 더 그 지긋지긋한 '수험생' 기간을 살아야 한다. 어머니들은 조금 지쳐보였다. 학교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었다. 혜진 엄마(조경순, 44세), 강희 엄마(김미연, 43세), 지영 엄마(유승희, 48세), 그리고 명환 엄마(박춘옥, 53세)가 <대나무> 요청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명환 엄마와 지영 엄마는 이미 첫 째를 대학에 보낸 '경력자'다. 혜진 엄마와 강희 엄마는 이번에 첫째들을 대학에 보낸다. 특히 혜진 엄마는 연년생 자녀를 두고 있다. 3학년인 혜진이 바로 아래 남동생은 2학년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누구보다도 '입시'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년 입시 제도가 확 바뀌기 때문이다.

고3여름 교실은 땀냄새가 넘쳐난다. 이들을 묵묵히 뒷바라지 하면서 함께 가슴 좋이는 엄마들의 응원도 결실을 향해 영글어간다.   <사진제공. 오현고등학교>

대학 왜 보내냐고요? 우리가 못했던

일하면서 더 행복했으면 하니까요 
 

자리에 앉았다. 엄마들은 각각 아이스커피, 카라멜 마키야또, 그리고 딸기 쥬스 두 잔을 시켰다.  

혜진 엄마: 아무래도 먼저 대학 보낸 경험 있는 명환 어머니나 지영 어머니, 두 분  언니들이 더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요?
명환·지영 엄마: 우리가 무슨… 노하우 그런 거 없어요. 그때그때 달라요. 즉석 강의야. 애들도 다르고 입시제도도 너무 빨리 바뀌어서 노하우 같은 건 없어요.
강희 엄마: 그래도 저희보단 경험이 많으시잖아요?
명환 엄마: 경험? 경험이라. 이거(올해 입시)하고는 다른 거 같아요. 애들도 다르고, 제도도 다르고.
지영 엄마: 답이 없는 것 같아. 똑 같은 거 같아요, 잘 모른다는 거 말에요. 사실 큰 애 때보다 더 힘들어요. 입시 제도가 더 복잡해졌잖아요. 어유, 정말 데미지가 와 닿아요. 데미지가.
명환 엄마: 애들 성격이나 성향 따라 뒷바라지 하는 게 달라요. 남자애냐, 여자애냐 따라서도 다르고요.
지영 엄마: 큰 애는 안 그랬는데, 둘째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엄마가 그걸 다 받아줘야 하지 않냐는 눈치죠. 그러니까 더 힘들어요.
명환 엄마: 큰 애가 딸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 녀석은 거저 키운 거 같아요.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줬거든요. 둘째는 사내 녀석인데, 자기 하고 싶은 데로 다 하게 할 수 없으니, 서로 힘든 거 같아요.
지영 엄마: 대학마다 입시요강도 다르고, 그걸 다 확인해야 하는데, 선생님들도 다 도와주실 수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 엄마들이 다 챙길 수도 없고. 그러니 더 어려워졌어요. 큰애 대학에 보내면서 터득한 비결? 그런 거 없어요. 더 머리가 아파요.
강희 엄마: 입학사정관제 같은 좋은 제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라요. 자기소개서도 당연히 누군가에게 돈 주고라도 부탁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엄마들은 너무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 때문에 힘겨워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특별한 '경험의 수'가 축적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학을 먼저 보냈다고 해서 거기서 무슨 '노하우'를 얻기란 정말 어렵다고 했다. 내년에 둘째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 혜진 엄마는 올해도 막막하지만, 올해 이렇게 고생하면서 겪는 경험들이 내년엔 그냥 무용지물이 된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완전히 입시제도가 자체가 바뀌니까 학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대비해야 할 지 몰라서 엄청 스트레스 받고 있죠." 입시 제도가 예측할 수 있는 방향에서, 일관된 틀에서 조금씩 변한다면 좋겠다는 바람은 혜진 엄마만의 소망이 아니었다.

사실 고3 수험생을 지켜보는 엄마들의 심정은 편치 않다. 엄마들도 함께 고3 365일을 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땀방울을 그녀들은 어깨가득 쏟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엄마들이지만, 교실 안에서 '공부'에 몰두해야하는 아이들이 그저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혜진 엄마: 감성적인 부분이 중요한 때를 지나고 있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가장 예민할 때고요. 이걸 지켜봐줘야 하는데, 감성 부분은 완전히 배제하고 공부만 하게 하니 힘들 수밖에요. 무조건 학과 공부에만 경쟁적으로 내모니까, 내면적인 가치, 감성적인 부분의 존중 이런 경험 없이 입시만 매달리고 있는데, 지켜보기가 너무 불쌍해.
지영 엄마: 우리 지영이가 그래요. 지금 자기들이 너무 슬프다고. 공부만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세상을 이해해나가야 하는 데, 그걸 못하고 서로 죽어라 경쟁만 하니까 슬프다는 거죠.
혜진 엄마: 친구들과 진짜 뛰어놀 수 있을 때 뛰어 놀아야 하는데, 전혀 그걸 못하니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인 거죠. 대신해줄 수도 없는 거고, 정말 안타깝죠. 

이제 고3 생활은 중반에 접어들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아이들의 체력도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는 때다. 수험생 입장에서 보면 잠과의 전쟁에, 체력 문제까지 겹치게 마련이다. 엄마들은 '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반장을 맡고 있는 혜진이의 엄마는 "지금 가장 힘든 것을 꼽으라면, 잠과의 싸움? 공부는 혼자 해낼 수 없더라고요. 엄마들이 같이 호흡 맞춰줘야 해요. 애가 새벽 같이 일어나야 한다면, 저도 같이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어요. 어떤 때는 밤새 뜬 눈으로 있다가 새벽에 깨워주고 조금 새우잠 자고…….애들 체력도 바닥이지만, 엄마들 체력도 지금 바닥일거에요"라고 말한다.
명환 엄마도 거들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더 짜증내고 그래요. 체력이 떨어지면서 인내심도 같이 증발하는 거죠. 엄마들이 넓은 마음 가져주길 바라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요? 큰 애 때하고 또 다른 거 같아요. 저도 체력이 바닥이에요." 강희 엄마와 지영 엄마 표정도 밝지 않아 보인다. 애들이 잘 알아서 하는 쪽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따라서 엄마 체력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표시다.

강희 엄마: 고3 되면서 저희 부부가 싸우는 게 일요일에 애를 좀 더 자게 하자는 문제에요. 저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강희를 평일처럼 깨워요. 남편도 그렇지만, 강희는 저더러 엄마 아니라 계모 아니냐고 째려볼 정도죠. 체력은 잠과 연결된 문제라고 봐요.
명환 엄마: 저희 애는 야자 안하고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있어요. 잠을 안자고 새벽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음날 보면 그게 별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12시 반이 되면 불을 꺼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신경쓰려 하죠.
혜진 엄마: 언니, 그건 간섭이에요. 간섭. 잔소리고요. 잠자는 거 까지 터치하는 거잖아요.
명환 엄마: 저의 명환이는 아무리 못자도 5~6시간은 꼭 자야 리듬이 돌아가는 거 같아요. 남자애들 3~4시까지 공부한다고들 해요. 그리곤 다음날 수업때 자는 거죠. 이건 안 좋은 습관이라고 봐요. 체력 관리에도 도움 안 되고요.
지영 엄마: 애들 깨울 때 보면, 헛소리를 가끔 할 때가 있어요. 다른 소리를 중얼중얼하는 거예요. 그만큼 애들이 지쳐있다는 거겠죠. 참 안쓰러워요.

'잠과의 전쟁'…체력관리에 발 동동 구르는 엄마들

그래서 이즈음 수험생을 둔 엄마들의 관심은 아이들 체력관리일 수밖에 없다.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강희 엄마는 "아이가 원하는 계절 음식 해주고, 아침에 가끔 고기를 구워주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남자애를 키우는 명환 엄마도 고기를 필수라고 말한다. "저희는 아침 식사를 가족 식사로 꼭 하고 있어요. 아무리 바빠도 국에 밥을 말아서 차 타기 전까지 5분이라도 떠먹이죠. 그렇지 못하면 김밥이라도 들려 보내서 아침을 꼭 먹게 해요." 규칙적인 식사, 거르지 않고 제철에 난 음식을 먹이는 것이 체력 관리의 시작이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체력 걱정, 집중력 유지……. 여름 방학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점점 구체화되는 걱정이 있다. 바로 진로 문제다.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소신대로 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엄마가 인생과 사회 선배로서, 조언자로서 선택을 거들어야 하느냐를 놓고 가끔 부딪치기도 한다. 엄마들은 자녀들이 더 좋은 대학, 세칭 명문대에 진학하길 모두 바라고 있었다.

명환 엄마: 진학 정보 수백가지지만, 우린 진짜 모르겠어요.
지영 엄마: 입시전형 설명회 같은 델 가보면, 큰 아웃라인만 있고 세부적인 거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상담 신청해야만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돼 있어요. 그 많은 요강, 저희들은 사실 모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선생님에게 기대지만, 선생님들도 그걸 다 하실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또 선생님하고 상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업무도 많으시고, 선생님-학부모 관계도 그렇고.
혜진 엄마: 혜진이는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렸어요. 거기에 맞춰가는 중이고요.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걸 찾아냈거든요. 고1, 2학년 때 고민 끝에 경영 컨설팅쪽으로 방향을 잡았거든요. 아빠의 영향도 있어요. 이제 나머지는 얼마나 열심히 해서 성과가 나오냐에 달렸다고 봐요. 암튼 힘들어요. 방향만 갖고 있지,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거니까요. 끝까지 정시까지 가봐야 애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어요.
지영 엄마: 정말 소신대로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현실적으로 대학이 어디냐가 여전히 중요하잖아요. 마지막에 결국 점수따라 가는 거죠. 주변에 봐도, 꿈이 없으니 다들 이런 선택을 하더라고요. 지영이는 다행히 테마파크 기획 같은 걸 하고 싶어해요. 원래 꿈이 수시로 변하는 아이였지만, 이젠 테마파크 기획쪽으로 갈 거 같아요. 문제는 대학에 관련 학과가 많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은 외국에 나가서 꿈을 구체화하겠다는 계획이고, 지금은 영어통번역쪽으로 일단 방향을 잡았어요. 영문학은 싫어해요. 적성이 맞지 않다는 거죠.
강희 엄마: 저희는 대학이나 학과보다 '직업' 부분을 먼저 살폈어요. 안정적인 직업을 원한다고 하길래, 교사를 권했죠. 사범대 가는 거요. 그런데 싫다고 하더라고요. 좀더 활동적인 걸 원한 거죠. 그래서 찾은 게 흥미를 갖고 도전해볼 만한 곳이 문화인류학쪽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몇 군데 없는 학과잖아요. 거기서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결심을 굳혔어요.
명환 엄마: 사실 명환이는 체육학과를 가고 싶어해요. 운동을 워낙 잘하고, 도 대회에 나가면 상을 휩쓸어 오거든요. 등록 선수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지만, 명환이는 아들이고, 그렇다보니 좀 기대가 커요.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체육학과 나오면 진로가 좁잖아요. 독일 유학도 가야하고, 갔다와도 진출한 자리는 제한돼 있고요. 그래서 많이 설득했어요. 갈등도 있었죠. 아빠가 어려서부터 운동을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해서, 다행히 아빠랑 대화의 공감대가 컸어요. 아빠가 설득했죠. 그래서 내린 선택은 '건축학과'를 가겠다는 거에요. 학과가 아니라 대학을 보고 내린 결론이에요.

따뜻한 가슴 지니고 살았으면…"어서 남은 시간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엄마들은 지금 입시가 가장 큰 인생의 문제로 닥쳐있지만, 대학을 가고, 이후에는 아이들이 좀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우리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 하면서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엄마들 마음이 다 같지 않을까요?" 혜진 엄마의 말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명환 엄마는 명환이가 모든 면에서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희 엄마는 "저는 아이가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해요. 자신의 실패도 감수할 수 있고,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오후의 햇살이 창밖으로 길게 늘어진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정시를 마치고, 마지막 대학 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거예요. 아이들 스트레스 못지않게 우리 엄마들도 극한의 긴장을 살고 있어요. 어서 남은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명환 엄마가 말한다. 내년 입시까지 걱정하고 있는 혜진 엄마는 2년이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응수한다. 그렇다. 엄마들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 시간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수험생과 같은 긴장 속으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daenam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