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시야와 눈높이로 보는 진로의 세계는 협소할 수 밖에 없다. 주변이나 기관을 활용하자.  <사진제공. 정성우>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로망은 하나다. 좋은 대학에 보내서 자식들을 편안하고 우아하게 살게 하는 것. 그러다 보니 진로는 진학과 동심일체가 된 지 오래다. 그 현실을 무시하고 진학과 분리된 진로를 내담자에게 권하면 학부모들의 표정이 대번에 바뀐다. 어쩔 수 없이 진로진학상담교사들도 현실에 적응해서 진로와 진학을 함께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진로라는 것이 성적이 뒷받침 안 되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소위 사(士)자가 들어간 직업들이 그런 부류다. 말하자면 진로설계를 할 때에는 자신의 학업 능력을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가 될 것이다. 고교생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공부에 소질도 부족하고 적성이 맞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공부를 덜 해도 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도무지 되지도 않는 공부를 강요하다 보면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제적, 지리적, 상황적 이유 등으로 공부시기를 놓쳐서 상대적 불이익을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식의 학력에 대해 갖는 집착은 집요해서 아이들은 스트레스로 어린 나이 때부터 원형 탈모증에 시달리곤 한다. 부모와 자식을 동일시하거나 자식을 부모의 분신으로 여기는 착각은 이제 끝내야 할 것이다. 분신이 아니라 엄연히 독립된 인격체라는, 윤리 시간에 들었던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부모의 시야와 눈높이로 보는 진로의 세계는 협소할 수밖에 없다. 독선적 진로관에서 벗어나 시스템화 된 기관의 프로그램을 찾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최소한, 아이가 원하는 직업들을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묻고,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며칠간만이라도 맡겨서 허드렛일이라도 거들면서 그 직업 세계를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경험하게 한다면, 아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로에 대해 나름대로 성찰하고 결정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고자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는 아예 학교교육 계획서에 실어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봤다. 이름 하여 스마트진로체험. 물론 이 프로그램은 동기 선생님 학교의 것을 벤치마킹해 본 것이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으나 곧 엄청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동기 선생님의 학교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 동창회를 통해 각종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창생들을 활용했으나 본교는 역사가 일천해 동문 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결국 잘 알려진 기관들을 선택해서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대표전화번호를 따오고, 시간만 나면 텔레마케터처럼 전화기에 매달려서 그 기관과 연관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창출하거나 그 기관의 기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섭외를 집요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흡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학부모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 안내지를 완성해서 의기양양하게 배부하고 체험현장에 나가는 하루 이틀 전에 현장에 최종 확인 전화를 돌렸는데, 몇 개의 기관에서는 담당자가 바뀌어서 잘 모르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듣기도 했다.

진로체험 계획서를 써서 보고서 작성의 기초자료로 삼게 했으며, 완성된 보고서는 에듀팟(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 시스템)에 입력하도록 지도했다. 체험현장의 수용 인원은 제한이 있고, 특정 현장을 학생들이 편식하려 들기에 선착순의 원리로 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 방과후학교 배너를 활용했다. 특정 시간에 사이트를 열어서 선착순으로 모집해서인지 탈락한 학생들의 불만은 크지 않았다.

이번 방학을 이용해서 각 가정에서는 주변의 직업인 자원을 활용해 자녀들에게 자유롭게 진로체험을 해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결과는 에듀팟에 기록해 나중에 입학사정관 전형을 대비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려보면 좋겠다.

정성우 서울 청담고 진로진학정보부장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대학진학지도지원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