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영화「도가니」,「부러진 화살」,「말하는 건축가」. 이들 영화를 이끄는 긴장감에서 우리 사회의 예민한 이슈들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수능 전후로 수시 접수가 이뤄진다. 두말할 것 없이 논술과 구술 면접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수능과 정시를 위해 공부했던 학과 공부도 중요하지만,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시사 상식도 필요하다. 지난 1년간 한국 사회를 강타하며 이슈가 됐던 한국 영화 세 편을 골라봤다. 이 영화들이 관객들의 이목을 끈 이유가 무엇일까. 이 영화들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살펴보는 것도 수시를 위한 작지만 강한 준비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흥행이 된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미국 마블코믹스의 수퍼 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에 더 열광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현상은 방송ㆍ영화계에 팩션(Fac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팩션은 사실을 뜻하는 Fact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이 합쳐진 신조어다.

실제 사례 영화들을 살펴보면, 지난해 도가니 광풍을 불러일으키며 ‘사회복지사업법개정’ 논의까지 이끌어낸 영화「도가니」(2011.9)를 기점으로, 지난 1월에는「부러진 화살」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 3월에는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로 유명한 정기용 건축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말하는 건축가」가 개봉해 잔잔한 감동을 이어갔다. 최근 종영한 SBS의 월화드라마「추적자」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도 Faction의 효과와 같은 맥락상에 놓여있다.

「도가니」, 광주인화학교를 폐교시킨 SNS의 힘

시작은 한 편의 소설이었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은 2006년에 그의 작품「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을 이미 영화화한 경력이 있다.「도가니」의 주제가 성폭력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였다면,「우행시」는 사형수를 주인공으로 그렸다. 두 작품 모두 예민한 소재를 영화에 차용한 것이다.

공 작가의 소설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형제도가 존재하긴 하나 1997년 이후 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광주인화학교 문제도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한동안 사회면을 장식하다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약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광주인화학교는 영화「도가니」로 다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영상의 힘은 엄청났다. 도대체 영화『도가니』의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도가니」는 2000년부터 5년간 광주인화학교의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성폭력과 학대를 저지른 교장과 교사의 행위를 사실에 근거해 사실적인 영상으로 그려냈다. 거기에 덧붙여 지방 학교라도 전임교원이 되기 위해 학교발전기금의 형태로 현금을 상납하는 것, 경찰과 학교 재단의 유착관계들까지 보여줘 부패한 사회의 모습까지 보여줘 관객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460만 명을 동원한「도가니」가 현실에서 보여 준 힘은 대단했다. 누리꾼들은 재수사와 폐교를 청원했고, ‘도가니방지법’으로 알려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촉구 10만인 시민청원운동이 열리기도 했다. 클레이 셔키 뉴욕 언론대학원 교수는 그의 저서『많아지면 달라진다』에서 “참여 숫자 혹은 콘텐츠 증가는 단순한 숫자의 합을 넘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변수를 무수히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셔키 교수는 인터넷 이전의 시대를 TV미디어 시대로 규정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TV 시청에 낭비됐던 막대한 양의 시간이 기술 발전을 통해 공동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 사회를 변화시키는 자원이 됐다. 셔키 교수는 이 자원을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 라고 부른다.

‘인지 잉여’ 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지,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고 분노하는지를「도가니」를 통해서 살펴본다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부러진 화살」, 대학은 나에게 무엇인가

한물 간 감독으로 인식됐던 정지영(66세). 그가 주연배우 안성기의 개런티도 주지 않고 찍은 저예산 영화「부러진 화살」을 들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 영화가 극장에서 곧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다. 동명의 소설은 이미 출판됐었고, 법정영화라는 장소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이 영화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관객들은 석궁을 맞은 판사보다 석궁을 발사한 김명호 교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아역시절부터 선한 주인공 역을 맡아왔던 안성기가 김명호 교수의 역할을, 권위의식에 가득차고 뻔뻔하게 설정된 판사들 역할을 악역전문 배우가 맡은 것도 관객의 분노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기각합니다’로 일관하는 사법부를 향한 소시민의 분노만으로 이 영화를 읽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석궁사건 이전에 있었던 교수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시작은 시험문제였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과)는 신입생을 상대로 낸 시험문제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대학 측에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학은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 해 ‘연구소홀’을 이유로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해 학교를 떠나게 된다. 대부분의 동료 교수들은 이 상황에 침묵했다. 김 교수는 전국 44개 대학의 수학과 교수 189명과 저명한 외국 학자의 의견을 모아 문제의 오류를 법정에 주장했다. 한 명의 교수와 사립학교의 싸움. 처음부터 그 끝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립학교 개정법이 발표됐고 김 교수는 한 번 더 구제를 신청할 요량으로 법원의 문을 두드리지만, 또다시 패소한다. 이번에는 한 시민과 법과의 싸움이다. 분노한 김 교수는 담당판사의 집을 찾아가 석궁을 발사하고 4년의 실형을 살았다.

「부러진 화살」을 통해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사회를 지배하는 두 권력, 자본과 법이다. 그리고 오류를 인정해 학교 위신이 떨어지는 것이 정답을 말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대학의 풍조다. 대학이라는 지성의 장에서,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할 수 없는 풍토가 완연하다. 과연 1년 등록금만 1천만 원에 육박하는 오늘, 우리가 대학에서 배워야할 것은 무엇인가, 대학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대학은 그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의식을 형성한다. 학생과 교수들은 모두 인간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오직 진리만을 탐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대학의 이념』, 칼 야스퍼스(1883.2.23?1969.2.26) 중에서

「말하는 건축가」, 집의 개념을 행동반경으로 확장하다

부동산 투기 열풍. 부동산의 가치 상승을 통해 이득을 보려했던 사람들은 빚을 내서 무리하게 집을 구입했다. 시간이 지나면 집값이 오르면 원금은 그 차액으로 충당될 것이니, 은행에 대출 이자만 갚으며 집값 오르길 기다린 사람들. 하지만 두 번의 세계금융위기 앞에 집값은 폭락했다. 강남과 송파를 비롯한 버블세븐지역은 반값세븐지역이 됐다.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농경시대에는 가족의 숫자가 생산력과 직결됐기에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으며, 사랑방, 안채, 바깥채, 대청마루, 마당과 같은 공간의 문화가 존재했다. 은밀한 개인적 공간과 가족의 공간이 공존하던 집의 문화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큰집마저 아파트촌으로 바뀐 오늘날, 완전히 사라졌다.

「고양이를 부탁해」,「태풍태양」의 정재은 감독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정기용(1945?2011) 건축가를 따라다니며 찍은 다큐멘터리「말하는 건축가」에는 그동안 우리가 무시했던 공간과 건축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겨있다.

삶의 근거지 집의 의미

우선 건축가 정기용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자체가 한국 건축계의 이단아였지만, 건축에 있어서 뚜렷한 지향을 가진 실천가였다. 정기용은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과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에서 건축을 배우고 귀국했다. 건축을 천직으로 삼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집은 지어본 적 없는 검소한 사람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보이듯 그는 ‘무주 프로젝트’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정기용은 평생에 걸쳐 건축의 사회적 양심을 역설했으며, 건축을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길 열망했다. 또한 인위적이거나 자연 환경에 반하는 건축을 거부함으로써 ‘흙 건축의 대가’, ‘생태 건축가’로 불렸다. 이집트에서 흙 건축물을 접하고 받은 충격을 국내에서 실천한 과정이 영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정기용이 건축을 할 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지구를 살리는가? 삶의 질을 높이는가?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정기용은 영화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좋은 건축, 좋은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교감, 기억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정기용이 현재 건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동대문복합단지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도, 동대문이라는 공간에 남아있는 수많은 서울 시민의 기억과는 동떨어진 구조물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정기용은 마지막이 된 일민미술관 건축전시회 개막 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에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귀담아 들을 자세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걸 반영 안 하고 대가들의 건축만 배워가지고 건축가와 사회는 따로 가고 있습니다. 그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히는 노력을 위해서 이 전시가 마련되었습니다.”

방향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오늘날,「말하는 건축가」를 통해 내 주변의 공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집은 내가 잠자는 공간, 투자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행동하고 있는 모든 범위를 포함한다는 정기용 건축가의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daenamo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