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돈기성>

트와이라잇 시리즈로 유명한 뱀파이어, 피가 난무하는 고어 영화,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물… 등줄기를 오싹하게 해 줄 공포영화는 너무 많다. 그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좀비영화다. 그렇다고 좀비 영화를 그저 무섭기만 한 공포영화로 치부해 버리기엔 좀비가 너무 아깝다! 가장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가 좀비영화이기 때문이다. 좀비의 기원부터 특징, 탄생 때와는 달라진 현재의 모습 등으로 영화에서 사회의 예민한 이슈들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보자.

뱀파이어의 조상「드라큘라」의 기원은 루마니아에서,「나이트매어」의 프레디는 주인공들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은 벼락을 맞기까지 한다.「스크림」류의 슬래셔 영화들은 주인공들이 싸이코패스라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하지만 공포영화 주인공들의 기원은 그만큼 독특하다. 그 중에 좀비는 단연 백미다.

좀비, 탄생부터 다르다!

원래 좀비는 부두교에서 주술사가 마약으로 노예들을 조종했다는 저주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접하는 좀비에 대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현재 좀비에 대한 이미지는  좀비영화의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조지 A. 로메로 감독의「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최초의 좀비영화라 불리는「화이트 좀비」(1932)가 있긴 하지만, 좀비에 대한 이미지를 정립한 영화가 로메로 감독의 좀비 3부작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살아난 시체들의 밤」은 부모의 무덤을 찾은 남매가 갑자기 살아난 시체들에게 공격을 받으며 시작된다. 로메로 감독은 특이하게도 시체들을 살아나게 만드는 원인으로 미국의 우주선이 고장나 지구로 귀환하며 유출한 강력한 방사능을 지목한다. 방사능이 죽은 자의 뇌파를 자극해서 살아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설정을 통해 로메로 감독은 커뮤니케이션과 테크놀로지를 비판한다. 우주로 쏘아올린 우주선은 인간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시도이고, 그 우주선의 실패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실패가 돼 죽은 자를 깨우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된 해가 1968년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아폴로 우주선의 성공으로 미국이 축제무드에 젖어 있던 시기에 로메로 감독은 인간의 우주 항공산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과 악, 낮과 밤.

사실 좀비라는 존재는 정치적 풍자에 매우 잘 들어맞는다. 인육을 찾아 헤매는 좀비는 무언가에 홀린 듯 우둔한 대중 같은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살아난 시체들의 밤」에서 선과 악은 처음부터 명확하다. 인육을 먹는 좀비는 악, 보안관을 비롯한 추적대가 선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아침이 오고, 추적대들의 비인간적인 대량살육이 자행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선과 악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하게 된다. 좀비를 이해와 동정의 눈으로, 추적대를 의심과 의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은 더 이상 우둔한 현대인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밤이라고 악한 것이 아니요, 낮이라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의미에서 살아난 시체들의 죽음은 자유와 존엄성조차 잃어버린 가여운 존재들이고, 그들에게 그런 살육의 재난을 가져다 준 이들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종문제, 백인의 손발이 돼.

요즘 좀비 영화에서는 강도가 많이 약해졌지만,「살아난 시체들의 밤」에서 인종문제는 첨예하게 드러난다. ‘밖’에서 배회하는 살아난 시체들은 백인들을 위협하는 유색인종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메로 감독은 흑인을 집 ‘안’, 백인들과 함께 둔다. 왜일까. 게다가 이 흑인은 공포의 밤이 다 지나도록 이기적인 백인들 사이에서 명석한 판단력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이 흑인 역시 아침에 도착한 추적대의 총탄에 쓰러진다. 좀비 중의 하나로 오인받았기 때문이다. 이 흑인에게는 좀비들로 위험했던 밤보다도, 인간을 만날 수 있는 아침이 더욱 위험한 것이다. 백인들은 들판, 협곡, 바다, 밤 중 같은 위험한 순간에만 유색인종을 필요로 한다.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백인 우월주의적 시각이 좀비영화에 잘 드러나 있다. 최근 좀비영화들(「REC」,「레지던트이블」등)도 주인공은 백인이며 그 조력자들로 유색인종이 분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며 좀비도 변했다?

로메로 감독이 정립한 좀비의 특성 중 하나는 흐느적거리는 움직임과 낮은 지능수준이다. 좀비의 완력은 보통 인간의 그것보다는 세지만, 시야에서 목표물이 보이지 않을 경우 돌아설 정도로 지능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가 두려운 이유는 도망칠 곳 없는 폐쇄적인 공간 설정과 느릿하지만 떼거리로 몰려오는 좀비들에 대한 압박감이다. 좀비가 빨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좀비 영화가 2천 년대에 접어들면서 크게 바뀌기 시작한다. 두 명의 감독, 잭 슈나이더와 대니 보일의 영향이다.

“스파르타!”를 외치던 근육의 향연,「300」을 기억한다면 반가운 이름. 잭 슈나이더 감독의 데뷔작은 놀랍게도 새로운 스타일의 좀비영화「새벽의 저주」(2004)였다. 이는 대니 보일 감독이「28일 후」(2003)에서 새롭게 창조한 좀비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힌 수작으로 꼽힌다(이 영화는 로메로 감독의 좀비 3부작 중 2부인「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을 성공적으로 리메이크했다고 평가받는다).

질주하는 속도감의 공포

2천 년대에 들어서면서 좀비 영화에서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좀비의 움직임이다. 엄청난 속도감을 보여준다. MTV 화면처럼 빠르게 넘어가는 컷 속에서 좀비들은 마치 ‘미친 듯이’ 살아있는 인간을 향해 달려든다. 이는 그 이듬해의 잭 슈나이더 감독의「새벽의 저주」에서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화면으로 좀비 움직임의 한계를 지웠다. 좀비는 더 이상 흐느적거리지 않는다. 인간보다 빠른 속도로 뛰며 인간을 사냥한다. 거리를 걷고 있는 생물체는 오로지 인간뿐이다.

대니 보일 감독과 잭 슈나이더가 제안한 새로운 좀비의 이미지는 가상현실, 게임과 관련돼 있다. 좀비는 뇌를 파괴하거나, 가슴을 쏘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 주인공인 샷건으로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려야 죽는 좀비들을 보면서 젊은 관객층은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마치 게임과 같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레벨 상승으로 최고 단계의 좀비 대장을 깨뜨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인간의 존엄성 해치는 바이오산업 경고

좀비가 깨어나게 된 원인도 조금씩 변형됐다.「레지던트 이블」의 경우, 바이러스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에서 인간 생체 병기를 실험하다가 좀비가 생겨난다.「나는 전설이다」의 경우도 이유가 불명확한 생체 실험 중에 미국의 많은 주에서 좀비가 발생한다.

로메로의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우주 항공산업으로 대치하던 시기였다. 1968년의 최첨단 산업분야가 우주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천 년대 들어선 좀비영화에서 바이오 산업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해진다. 긍정적으로 보면,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생체로봇을 통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바이오산업. 그러나 윤리적 문제를 가진 바이오산업이 가진 부정적 측면이 인간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좀비의 발생 원인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두 감독은 이 산업이 초래할 끔찍한 미래의 모습을 좀비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니 보일 감독의「28일 후」에서 좀비가 발생하는 원인이다.

영국에서 발생하는 ‘분노 바이러스’는 걸리는 즉시 광폭해져서 질주하기 시작하고, 닥치는 대로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 피나 상처를 통해 전염이 된다. 헐리웃에서 첨단 산업에 대한 경고로 변주된 좀비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그려지는 동안, 영국에서는 분노를 참지 못한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끊임없는 첨단산업에 대한 선점 욕구가 헐리웃 좀비 영화에 반영됐다면, 18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을 잊지 못하는 영국의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이 영국 감독 대니 보일의 좀비에 투영됐다고 보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일까.

이렇듯 좀비 영화에서 읽을 수 있는 사회적 징후는 무궁무진하다. 최근 좀비 영화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경향 중 하나는 신체의 자유로움을 획득한 좀비가 지능적으로 진화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비 영화의 거장 로메로 감독 역시「랜드 오브 데드」(2005)에서 집단적으로 인간에게 봉기하는 좀비의 모습을 그렸다. 컴퓨터 인공지능 산업이 발달하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daenam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