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學位, degree)는 일정 수준의 학술상 능력이나 성과에 대해 국가 또는 대학이 수여하는 것이다. 한국의 학위제도는 고등교육법에 기초를 두고, 전문학사·학사·석사·박사 4종류의 학위가 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면 전문학사를,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학사학위를 수여한다.

최근 ‘돈만 내면 학위를 준다’는 말이 파다했던 지방전문대 ㅂ대학이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로부터 ‘퇴출 명령’을 받았다. 이 대학은 무려 1천400여명의 학생들에게 부당학점을 줬고, 840여명에게는 엉터리 학위를 수여했다. 출석하지 않은 학생들의 출석을 인정해주거나 한 달에 한두 번 몰아서 주말에만 수업하고도 허위로 학점을 준 것이다.

수천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왜 이 대학을 선택했을까. 반대로 이른바 ‘학위장사’로 잇속을 챙기는 대학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학자인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과)는 “한국사회에서 학위(혹은 학벌)는 이미 계급을 넘어 신분을 결정짓는다”라고 성토했다. 어떤 학위를, 어느 수준까지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결정된다니, 학위는 가히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통용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올 연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도 학위에서 비롯된 학벌사회를 해체하는 방법을 내놨다. “정의로운 경쟁방식을 통해 사회가 재편돼야 한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하고, 경쟁할 때 반칙이나 특권 없어야 한다. 물론 패자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인식하고 있는 ‘학위’는 어떤 모습일까.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수원 창현고등학교 3학년 101명, 취업·진학 준비로 한창인 가톨릭대·숭실대 3~4학년 140명에게 물어봤다.

‘학위란 나에게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학위’는 고교생들이 석사학위를 26.7%로 높이 평가한 데 반해 대학생들은 13.6%만이 응답했다. 대학생들은 학사학위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65.7%)고 생각했다. 이는 ‘학사학위의 의미’에 대한 답변에서 확인됐다. 대학생들은 학사학위가 특정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음은 물론 사회적 인정도 함께 받는다(각각 33.6%)고 느끼고 있었다.

반면 대학생 16.4%가 학사학위를 ‘지적 성취’에 의미를 뒀지만 고교생은 5.0%에 불과했다. ‘학문적 관심’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도 6.9%에 그쳐, 고교생들은 대학을 ‘배움터’라기보다 사회적 인정(34.7%)을 받기 위한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교생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교생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4%. 오히려 대학생들은 5년~30년 이내에 ‘가능하다(66.0%)’고 바라봤다.

‘학위는 OOO이다’라는 질문에는 대체로 학벌사회의 단면을 반영하는 답변을 적었다. 고교생들은 필수다, 서열이다, 꼬리표다 외에 ‘계급이다(학위에 따라 신분이 나빈부가 결정되므로)’, ‘수단이다(학문적 성취보단 취업용)’, ‘보험이다(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고 돈 낭비일 수도있으니까)’, ‘지름길이다(똑같은 일을해도학위가 높으면 더 편한 일을 할 거니까)’ 등을 꼽았다. ‘종이조각이다(큰 게 아니면 필요없다)’, ‘걸림돌이다(4년제 졸업장 없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부모님이 안시켜준다고 해서) 등 재치있는 답변도 나왔다.

대학생들은 대체로 ‘자격증, 신분증, 이름표’ 등 학위를 일종의 자격으로 여기고 있었다. 학위 취득자가 너무 많아서 학위의 의미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가톨릭대의 한 대학생은 “학위는 없자니 아쉽고 있어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학위는 계륵이다’라고 정의했다.

최성욱 기자 cheetah@daenamu.kr

<대나무> 17호 커버스토리 ‘학위’는 수원 창현고 엄동섭 선생님과 3학년 학생들, 박삼열·우정규·차봉준·최현철 숭실대 교수님, 이택동 가톨릭대 교수님이 도움 주셨습니다.